▲ 김 승 자 목사

오늘 SNS에 13세기 프람스에서 있었던 글 하나가 올라와 감동을 받았다. 1311년 프랑스 필립왕 당시 프랑스 안에서, 유대인들에게 “2일 안에 유대인들이 프랑스를 떠나지 않으면 사형시키겠다”는 포고령이 내려졌다. 유대인들은 2일 안에 자기 집이나, 가구나, 논밭을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 결국 프랑스 안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사형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급히 떠나야만 했다.

만일 귀금속이나 돈이 있어도 가지고 가다 들키면 빼앗기는 것은 물론이고, 사형이었다. 맨 몸으로 도망치듯이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그 때 파리에서 보석상을 하는 유대인이 있었다. 그는 파리를 떠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좋은 사람이고 양심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모든 보석을 맡기자.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우리에게 돌려 줄 것이다. 그는 매우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는 자기 보석가게에 있는 보석들을 모두 그 기독교인에게 맡겼다. 기독교인 이렇게 말했다. “다시 돌아오면 반드시 돌려 드리겠다.” 그렇게하여 망명길에 올랐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필립 왕도 세상을 떠났다.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도 완화됐다. 그 때 떠났던 유대인들은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보석상인도 돌아오는 대열에 끼어 있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었다. 그는 제일 먼저 보물을 맡겼던 이를 찾았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는 이미 다 늙은 노인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래서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보았다. 그 노인은 전 재산을 다 날렸다. 사업이 안 되어 집도 팔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이다. 절망이었다. 자기가 맡긴 보물을 찾을 길이 없었다. 끝까지 추적하여 보았다. 드디어 그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가서 보고는 더 절망스러웠다. 가난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굶주림과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몰골이 마치 해골과도 같았다.

다 죽어 가고 있었다. 몸은 쇠약할 대로 쇠약하여져서 죽음 직전이었다. 살아 있는 송장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무상자 위에 앉아 있었다. 유대인이 들어서자 그는 알아보고 놀라면서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당신의 보물이 있소. 소중히 간직하여 왔지요”예상하지 못하였던 일에 유대인은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내 보물을 보관하였습니까? 당신 재산은 다 잃어버리면서 내 보물을 어떻게 이 상자에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까?” 그 할아버지가 말했다.

“내 것이 아닌 데 어떻게 손을 댈 수 있겠소? 여러 번 삶에 절망하여 회의를 느끼며 자살하고 싶었지요. 죽고 싶어도 당신에게 이 보물을 돌려 드려야 하기에 죽지 못 하였소. 내가 이 보물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나는 내가 한 약속을 잊지 않고 당신을 기다리느라고 죽지 않았소 자! 받으시오” 그는 깔고 앉아 있던 보물 상자를 내밀었다. 유대인은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제 과거를 잊으십시오. 이제 축복만 남았습니다. 이 보물의 반은 할아버지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내 식구입니다. 이 보물을 같이 쓰며 같이 살 식구입니다. 아팠던 과거를 잊으십시오. 지금부터 나와 행복한 미래만 있을 것입니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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