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18세기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빅토르 마리 위고는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렇다 인간 모두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오늘의 사회는 사랑이 실종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모두가 내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리고 사랑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직장에 다니는 한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가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아가씨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고목처럼 여윈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웃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가씨의 아버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말없이 아가씨에게 우산을 하나 건네주고는 아가씨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셨다.

얼떨결에 우산을 받아 든 아가씨는 아버지에게 “고마워 아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특별히 할 말이 없어 잠자코 뒤따라 갔다. 그 후로는 비가 올 때마다 아가씨의 아버지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아가씨를 기다렸다. 어느 순간 아가씨는 아버지의 마중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퇴근길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렸다. 당연히 아가씨의 아버지가 마중을 나와 계실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가씨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가씨는 사정도 알아보지 않고 마중 나오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대로 비를 맞고 집으로 갔다. 아가씨는 집에 도착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버지, 어디 계세요?”

그런데… 잠시 후, 아가씨는 가슴이 뜨끔해졌다. 아버지의 손에는 갈고리 손잡이가 있는 우산을 꼭 쥐신 채로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자식은 누가되었든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잊고, 서운한 것만 생각하고 기억한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후회하고, 뉘우친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있었던 과정을 설명했다.

“몸살감기 때문에 오늘은 그렇게나 말렸는데도 너 비 맞으면 안 된다고 우산 들고 나가시다가 몇 발자국 못 가서 쓰러지셨단다.”

아가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밭고랑처럼 깊게 팬 주름살, 하얀 머리카락, 맥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아가씨는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웠다. 비 오는 날마다 마중 나오는 아버지께 힘드실 텐데 집에서 쉬시라고 말하기는커녕,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아가씨는 그날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뒤늦게 깨달고 한참을 울었다. 어느덧 아가씨도 결혼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파온다. 부모는 항상 “밥은 먹었니”, “차 조심해라”, “집에 일찍 일찍 들어와라”, “돈 좀 아껴 써라”, “별일 없지” 등 걱정이 담긴 잔소리, 여기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담겨 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사랑은 나와 너, 그의 마음과 마음으로 흐르는 생명수와 같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다투고, 갈등을 빚는다. 사랑은 서로 섬기며,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것은 예수님이 꿈꾼 하나님나라이다. 오늘 세계가 인종차별과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사랑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다.

특히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며, 가르쳐준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을 회복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서 실천하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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