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 바로 선교현장 돼야‘코로나19’바이러스감염증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세계선교의 방향수정 절실(2)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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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03  11: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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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 바로 선교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필리핀 수상마을 바꼴에서 헌신하고 있는 김상호 선교사와 현지 교인들.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화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에서 출발한다. 예수님은 열한제자에게 나타나 선교명령을 내렸다. 기독교세계화, 한마디로 이 땅에서의 하나님나라실현을 명령하신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8장 18-20절)

예수님의 세계화는 분명 나 혼자만의 구원을 약속한 것이 아니다. 인류 모두의 구원을 약속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나와 너,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 열한제자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영미교회의 전통을 이은 세계교회는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항해하면서 기도한 성 아구스티누스의 기도문을 하나의 선교 텍스트로 삼고 있다. 콜럼버스에 의해 추동된 세계화는 500년이 지난 오늘,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기자의 지적대로 전능하신 하나님 자리를 돈(맘몬)으로 대치시켰다.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됐고, 그의 성체는 미국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 됐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향해 항해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이 승리 하실 것이다. 지구상의 있는 모든 백성들의 우상들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는 기도문을 주문처럼 되뇌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을 향한 역사적 항해는 식민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세계화 의지와 구체적으로 결합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피선교국의 문화와 역사를 몰각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기독교 세계화의 꿈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이루어지기 시작해,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맘몬, 강대국을 숭상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빌라도와 대제사장의 진리인 생명을 핍박하며,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기독교 식민지화 시켰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존중하는 자기희생의 참 진리는 없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성경말씀서 이탈한 것이다. 콜럼버스의 전기를 쓴 그의 둘째아들은 기독교의 선교명령과 제국주의의 의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하나님의 지존하심은 인디오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생필품의 부족과 질병까지도 보내주어 그들의 수가 전에 비해 3/1로 줄어들게 하셨다. 이것을 통해서 분명해진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과 고귀한 뜻을 통해서 그 길은 놀라운 승리와 원주민들의 굴복이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에 비해서 우리의 것들은 모든 면에서 우수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압도적 다수가 우리의 유리한 조건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한울아카데미 손규태 저 <세계화시대 기독교의 두 얼굴> 참조)<9면 계속>

백인 우월주의와 근본주의를 청산, 모든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의 진리는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인류 모두에게 자유함을

백인우월주의를 청산하라

<1면에서> 콜럼버스 아들이 말하는 생명을 경시하고 징벌하는 하나님이라면, 누가 교회에 다니겠는가. 이는 분명 예수님의 세계화와 무관하게 백인 우월주의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국주의적 기독교선교와의 결합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유럽의 것은 우수하고, 피선교국의 것은 열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세계민족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 어부, 창녀, 고아, 불구자, 어린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자신의 삶의 현장이었고, 하나님나라운동의 현장이었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인 이 곳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런데 콜럼버스에 의해 추동된 세계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현장’서 이탈, 하나님을 징벌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하나님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자, 식민지세력들이 승리한 것이다. 하나님대신 맘몬(돈)으로 대치시켰다. 결국 ‘선교’라는 이름을 빌어 강대국을 숭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강대국은 선이고, 가난한 나라의 민족은 악이다, 2분법적인 셰계를 만들어놓았다.

몇 달 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인종주의 역사 청산과 흑인해방운동에 다시 불을 붙였다. 백인 경찰의 흑인 탄압의 뒤에는 백인우월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하나님나라를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백인 예수’ 논란이 중심에 다시 선 것이다. 세계는 이 흑인청년의 ‘한의 소리’를 들었다.

영국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곳곳에서 ‘백인 예수님’은 없었다. 흑인, 중국인, 중동인 등으로 묘사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사람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며 일했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성경책을 옆에 끼고 언론에 나타나 마치 자신이 선하다는 모습을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는 선한 것을 보지 못했다.

이 모습은 하나님나라선교에 방해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아니다. 유대인의 이데올로기와 제도와 관념에 갇힌 사람이다. 하나님은 누가 되었던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피조물을 자신의 자녀로 생각한다. 하나님나라는 유색인종과 배색인종에 대해서 차별이 없다. 하나님나라는 모두가 평등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을 받고, 잘못 믿으면 저주를 받는다. 그것은 선하다고 말하는 미국을 보면 해답은 극명해진다.

미국은 자신들만 옳고, 선하다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상대는 진리가 아니라고 규정짓고, 처절하게 짓밟아 버렸다. 심지어 이웃나라를 침략해 없애 버리기까지 한다. 이것이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이다. 그것도 선교,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선진국으로 여겨 오물까지 위대하게 생각했다.

헌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미국이 얼마나 후진국이며, 불평등한 나라인가를 절실하게 실감했다. 가난한 흑인이나, 가난한 국민들은 병원조차 갈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가장 좋아하고 숭배하는 강대국 미국이다. 3천만원이 없어 피조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을 향해 하나님의 정의, 자유, 평등, 예수님의 참진리를 외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예수의 진리, 곧 자기자신 희생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 의학에 있어 평등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의학은 엘리트 중심주의여서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죽는다. 21세기의 업적은 유전자의 발견이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발견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고, 변화된 인간을 만들 수 있다. 헌데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절대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의학기술의 발달 역시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하지 못했다. 얼굴을 뜯어고치고, 피부를 관리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다가 새로운 질병만 만들어 내고 있다. 질병에 질병이 양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얼마나 괴롭혔는가. 욥은 “조물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다”고 했다. 과학의 발달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신이 지혜이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요한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했다. 예수님의 진리에 의해서만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는 애기다. 기독교는 계시종교이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진리는 마음의 정화를 경험한 자만이 내안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피선교국 국민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아주기 위해서이다. 백인예수를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빌라도와 대제사장의 진리는 생명을 핍박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진리는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렇다 자기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 할 수 없다. 우리는 백마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기에는 기만과 술수의 함정이 있다. 종교는 그 역사적 과정에서 항상 진리를 거역하는 일이 생겼다. 허버트는 “종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곧 ‘사제’들과 그들의 제의 및 교리 때문이다”고 했다. 허버트의 말대로 계시종교는 예외 없이 시간이 지나면, 제도화되고, 그 과정에서 사제들 간에 권력투쟁이 일어난다. 세력을 장악한 자들은 교리를 만들어 반대세력을 제거한다. 이로 인해 사회적, 종교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 세계는 기독교란 이름 아래, 자유란 이름 아래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예수만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을… 빌라도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제국주의의 위력을 뽐내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인류에게 전해야 할 선교는 우리가 의지 할 분은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외쳐야 한다.

이렇게 종교는 역사적 과정에서 항상 진리를 거역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선교는 극명하다. 신교는 백인, 흑인, 황색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다. 국경도 없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성부)이, 백인의 하나님이라면, 흑인의 하나님이며, 황색인종의 하나님이다. 또 남한의 하나님이라면, 북한의 하나님이며, 인류 모두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성자)도 마찬가지이다. ‘백인의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대교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아니 자신들이 제도와 이념에 갇혀 예수님을 마음대로 악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수님이 꿈꾼 하나님나라

백인 우월주의와 근본주의에 매몰된 인간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성부’, ‘성자’, ‘성령’을 동원해, 하나님을 복방망이로 악용한다. 이들에게서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이들은 성경책을 옆에 끼고 교회에 잘 나가는 것처럼 포장하기에 바쁘다. 이들은 분열과 다툼을 일삼으며,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원치 않는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다. 이를 세계민족에게 전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선교한다. 예수님의 세계화실현은 우리에게 준 선교명령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없기 때문에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선교지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아니 세계민족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실현 할 수 있다.

강한 나라와 강한 공동체와는 다르다. 강한 나라의 대통령은 주권국가의 장군을 암살하고, 대한민국은 이 대통령에게 부대끼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남을 위해 희생 할 줄 안다. 흑인, 백인을 가리지 않고, 서로 섬기며,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힘이다. 오늘 세계는 영적인 힘을 상실했다. 내 마음에서 너의 마음, 그의 마음으로 생명수가 흐르지 않는다.

예수의 길, 그리스도인의 길에서 이탈했다. 그렇다보니 분열과 갈등이 만연하고,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릴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다. 대한민국 국민은 생명을 존중하며,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긴다. 차별 없는 나라, 서로 안전한 나라를 꿈꾼다. 그것은 신종 바이러스‘코로나19’정국서 그대로 보여주었다. 교회도 여기에 적극 협력하며, 대처했다. 예수님이 꿈꾼 하나님나라, 예수님의 이상세계는 요한복음 17장20-26절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동지애로 뭉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들만의 구원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모든 민족의 구원을 소망했고,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라는 것이다.

한민족선교로 전환하라

천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지상의 삶도 천상의 삶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애기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도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국교회는 신앙적 진리를 교회의 전통, 타락한 사제들이 만든 제도와 관념에서 찾지 말고, 오직 성서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성직자나, 교회가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나타난 진리,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루터 종교개혁정신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선교현장서 영미 선교사들의 산물인 ‘천상의 삶’을 강조하며, 피선교국 국민들에게 예수님의 세계화, 참 진리를 잘못 전달하지는 않았는지,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그것은 초기 한국선교사들 역시 우리의 문화와 역산은 몰각하고, 고난당하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천당’, ‘구원’만을 고집하며, 선교한 결과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내세워 마스크 쓰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다가 전국 79개 교회(기독교를 가장한 사이비 포함)에서 ‘코로나19’확진자가 발생했다.

마스크는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너와 그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이것은 이웃에 대한 배려이다.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살아 하나님이 명령한 느웨니성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했다. 느웨니성의 왕과 왕족은 물론, 백성, 짐승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인 동시에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신종바이러스‘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오늘, 모든 피조물은 구원받기 위해 금식하며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까지도 구원하신다. 오늘 세계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심각하다. 가뭄과 기근이 들고, 홍수로 인해 수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도 살아남기 위해 인간 못지않게 각종 요술을 부리며, 번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세계질서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질서까지 재편해 주고 있다. 일부 교회가 성령을 내세워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결과,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노출됐고, 교회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정국서 한국교회의 선교수정은 절실하다. 그리스도인들은 변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주변 강대국들의 압박으로 매우 곤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여기에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의 생활은 매우 궁핍하다. 인본은 한국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미국과 한국을 이간질 시켜 거리를 멀게 만든다. 미국은 일본 아베의 이간질에 넘어간다. 여기에다 중국과 소련은 한 술 더 뜬다.

이것은 남북분단이 가져다가 준 아픔이다. 이제라도 남한민족과 북한민족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남한교회는 통일이후 북한에 남한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키겠다는 선교전략을 여기에서 멈추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 보자. 이것은 남북한평화통일을 넘어 세계평화에 봉사하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에 주어진 남북한선교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남한만의 선교적 과제이다. 북한만의 선교를 말해서는 안 된다. 남북한선교, 아니 230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선교로 전환하고, 한민족선교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이데올로기와 관념에 갇혀 무조건 북한을 적대적으로 삼아 왔다는 선교적 오류를 인정하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 한민족선교를 위해 북한동포도 우리의 형제라는 사실을 깨닫자.

마태복음 28장 18-20절 예수님의 세계화 명령은 평소 우리가 엄신여긴 이방인, 원수, 성소자, 공산주의자 등을 마음에 받아들여 복음을 증거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루디야는 자기 집을 개방하고, 교회를 세워 예수님의 세계화에 참여했다는 성경의 기록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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