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이스라엘은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살았다. 그 나라는 항상 상처받고, 무시되고, 좌절당했지만, 그럼에도 그 나라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살았다. 그리고 그 나라는 장차 이뤄질 나라이면서, 지금 모든 나라들을 육성하고 심판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그들이 가꿔야 할 꿈과 이상을 담고 있으면서, 세상 나라들이 자기 안의 사악함을 감출 수 없게 하는 게 그 나라이다.

그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이 제 힘으로 세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또한 세상 나라 통치자들이 의로 통치하시는 그분 아래 머리 숙일 때 비로소 성취된다(사 32:1-4). 이사야가 말하는 그 나라는 이중적이다. 절대자이신 그분의 통치와, 그분에 의해 위탁받은 세상 나라 실권자의 통치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는 어떤 경우에도 세상 나라 권력의 절대화를 용인하지 않는다.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은 단지 그분께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을 뿐이다. 세상 나라 통치자들이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징표가 무엇인가? ①백성을 향해서 귀와 눈이 열리고, ②누구에게나 피난처가 되어 줄 수 있어야 한다. ③애매모호한 말로 정치적인 수사를 늘어놓아 백성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분명한 어조로 말해야 한다.

이사야는 그 나라가 성취됨으로서 나타난 결과를 말하고 있다“광야에 공평이 자리 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사 32:16). ‘광야’와 ‘기름진 땅’이 동일하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현실로서 병렬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광야처럼 살기 어려운 환경, 안보 위협이 팽배한 환경이나 시대에는 불가피 정의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정의는 동일하다.

“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사 32:17). 사람들은 평화가 깃들어야 비로소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다르다. 하나님의 의 곧 정의가 뿌리 내려야 평화는 꽃을 피운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평화와 행복은 ‘정의’가 뿌리내린 데서 결실을 맺는 것이다. 뿌리고 가꾸지 않은데서 열매를 기대할 수 없듯이, 정의가 없는 데서는 평화롭게 살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그러지 않은가?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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