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야곱은 마침내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창세기 설화자는 야곱의 승리를 승리로 말하지 않는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 32:31). 무엇이 문제인가? 이때까지 야곱은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냉혹했으며,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도덕했다. 사람들은 부도덕을 사기, 협잡, 음탕, 방탕 등으로 여긴다. 하지만 믿는 이들에게 부도덕은 차원을 달리한다. 호세아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부부관계로 표현했듯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양 다리를 걸치고 사는 삶이 부도덕의 전형이다. 그 어느 쪽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편리한대로 이용하는 삶이다. 지금까지 야곱의 삶이 그러했다. 그가 겪은 시련은 부도덕한 삶에서 온 것이다. 그런 야곱이 얍복강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삶으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겪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이 자기처럼 부도덕한 인간에게도 내리는 것을 깨닫고 내적인 갈등을 털어버리게 된다. 육신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기는 했지만,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는 세상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화가 깃들게 된다. 하나님과 대면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은 야곱이다. 그는 지금까지 거둔 성공에서 평화를 누린 적이 없다. 마음의 안정을 누린 적도 없다. 그의 얼굴이 빛난 적도 없다. 형 에서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야곱이라는 분열된 인간이 치유된 것이다. 부도덕한 삶을 청산한 야곱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의 치유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세속의 욕망 사이에서 양다리 걸친, 즉 부도덕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교회 안에 이전의 야곱처럼 살면서 성공한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의 고위직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지도층으로 활동하는 이들 가운데 그런 이들이 많다. 우리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부도덕한 열정은 비록 성공했다 할지라도, 영혼의 충만함을 가져오지 못한다. 마음의 안전과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우리가 야곱에게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자신의 부도덕한 삶을 변호하지 않고 과감하게 청산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몸에 밴 부도덕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사투했다. 하나님의 충만은 재물이나 권력의 쟁취로 얻어지지 않는다. 동료 인간을 이기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다. 야곱의 얼굴을 비추는 햇살이 한국교회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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