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목사
 

 한민족의 성씨의 알기 전에, 먼저 중국의 족보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성은 중국과 똑같이 한자로 표시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먼저 성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리나라 성씨의 기원을 한자가 들어온 시기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성씨를 최초로 나타난 때를 모계사회 시대로 보고 있다. 

 성이라는 글자가 갖는 뜻이 그러하듯 성의 출현을 여자, 즉 아이를 낳은 어미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씨를 사용한 것은 한자를 만들어낸 중국이다.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산, 강 등을 성으로 삼았다. 신농씨의 어머니가 강수에 있었으므로 강씨라고 했다. 황제의 어머니가 희수에 있었으므로 성을 희씨로, 순의 어머니가 요하에 있었으므로 성을 요씨로 했다. 

 중국에서 강장 오래된 성씨는 여라는 글자가 변에 붙어 있는 희, 강, 요, 사, 길씨 등이라고 한다. 이런 성은 모두 모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신화적인 인물이다. 신농씨나, 황제 역시 실제적인 인물이 아니라, 전설적인 인물이다. 신농씨의 머리는 소와 같고, 몸은 인간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복희씨는 머리는 사람인데 몸통은 뱀을 닮았다고 한다. 

 그들은 5천년 전에 있었던 하나라 이전의 제왕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당시에 제대로 된 한자와 성이 있었는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전설에 내려오는 인물은 한자가 제대로 만들어진 후에 거꾸로 올라가 만들어진 성씨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중국에서는 성의 기원을 그 시절에서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 성씨가 생겨난 시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 부터로 보고 있다. 중국의 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무렵으로 보는 것이다. 삼국 중 성씨를 제일 먼저 갖게 된 나라는 고구려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이었고, 또 건국 이전인 기원전 107년경, 뒷날 고구려 땅이 된 지여에 한사군의 하나인 현도군이 설치된 적이 이었다. 그 때 이미 중국의 한자문화를 접했으리라고 기록이 있다.

 중국의 사서에는, 고구려는 중국의 전한 말기(서시 9-25년)부터 왕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성씨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3대 대무신왕 때 좌보, 을두지, 우보, 송옥구라는 제상의 성명이 나온다. 이 기록을 통해 을이라는 성과 송이라는 성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고씨라는 성을 갖고 있었으며, 신하들에게 ‘극’, ‘중실’, ‘소실’이라는 성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역사기록이나, 중국의 문헌을 살펴보아도 삼국시대 이전에 성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나라 성씨의 역사를 정의하면,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 당나라 문물과 제도 등을 받아들이면서, 성씨가 등장했다. 그리고 고려조에 와서 비로소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중국의 성들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으며, 국민들 중 상당수가 중국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성씨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부터 전래되었다. 크게 나누어 중국 대륙 서쪽의 한족과 동이족, 그리고 남쪽의 묘족이 복합되었고, 오월족과 북방민족은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후에 하나로 통합되었다. 따라서 천하통일 전후해서 이동해 온 씨족은 비록 현재의 중국땅에서 왔어도, 실은 중국인이 아니다. 한족, 묘족, 동이족, 오월족, 북방족 중 어느 하나 였다. 중국 땅에서 왔다고 무조건 중국인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사단법인 한민족세계선교훈련원 이사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