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국서 개신교회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다. 얼마 전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 신뢰도 조사에서, “기독교를 가장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그것은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국서 개신교인들과 교회가 무게의 중심을 자신에게 두고,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생활을 하는 등 코로나19 집단감염지로 떠올랐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런 일로 개신교인들은 스스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두꺼운 벽을 쌓는 결과를 낳았다. 이웃과 단절된 종교는 한마디로 희망 없다. 코로나19 정국서 한국교회는 신앙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내세워 정부의 대면예배 자제, 강화된 방역수칙에 대해 정면 도전하고 나섰다. 그렇다보니 개신교회는 국민의 정서와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개신교회는 근본주의와 원리주의에 갇혀 진보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무조건 반대 아닌 반대를 해왔다. 그리고 진보적인 인사들에 대해 ‘빨갱이’, ‘좌경’, ‘용공’으로 매도해 왔다.

지난 9일 모 선교단체는 정부의 집회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상주 BTJ열방센터에서 2000여명이 넘는 선교단체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열어 방역당국을 긴장시켰다. 이들은 행사가 열린 이틀 동안 20-30씩 나눠 숙박하고,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이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목소리 또한 고조되고 있다. 방역당국 역시 비상이 걸렸다. 국민들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서, 이 선교행사에 대해서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를 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한국개신교는 공동체의식이 결여됐다.

한 네티즌은 “목사들과 경상도에 사는 사람들은 민주당 빨갱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교회 이젠 그만 다니겠다”고 비난했다. 어떤 집안의 가훈은 “교회에 다니는 인간하고는 상종도 하지 마라”고 정했다고 글을 올렸다. 자신의 빙고라고 소개한 네티즌은 “반사회적인 단체들 싹을 틔우기 전에 청소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 네티즌의 말대로 개신교는 반사회적인 단체인가. 여기에 대해서 개신교회들은 답을 해야 한다.

이 행사가 경상도에서 열린 만큼, 도매급으로 경상도가 도마 위에 올라왔다. 이쁜 맘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은 “경상도, 저 동네는 정말 답이 없구나”라고 적었다. 강아지와 산은 “교회다니는 경상도 인간하고는 상종도 하지마라”고 글을 올렸다. 혼자 쏘다니는 강아지는 “이번에도 경북이다. 항상 코로나 지옥문은 경상도가 열었다”고 이 행사기사 밑에 댓글을 달았다. 한마디로 일부 개신교회가 지역 간의 갈등, 일념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는 애기다.

상주시 관계자는 “대규모 종교집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연수원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강력히 부인했고 당시 행사에 참석자 명단도 제출하지 않고 있어 내부 회의를 거쳐 사법당국에 고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왜 개신교회는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단체로 변질 됐는가. 왜 스스로 이웃과 담을 쌓고 있는가. 이웃과 원한을 쌓고 있는가. 오죽했으면, 식당문에 “교회다니는 분 들어오자 마세요”라고 써 붙였겠는가. 요양원 정문에도 “교회 다닌분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경고문이 붙었다.

국민과 이웃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종교는 코로나19 정국이 끝나면, 교회의 기능을 상실하지나 않을까 적정이 앞선다. 성서는 이웃의 고통을 함께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 한국의 개신교가 인간사회의 혼란과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상황서 개신교회의 입장은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이제라도 한국 개신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정교분리를 처음 주창한 존 로크는 “국가가 교회에 신앙고백을 요청하면, 교회는 국가를 위해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교회는 이웃과 사이의 두꺼운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에 만들어진 벽을 허물어 벌겼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벽을 허물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국민 모두가 화합하고 하나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무게의 중심을 위로는 하나님에게 두고, 좌우로는 이웃에게 둘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모두 성육신 하신 주님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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