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사주간지 <슈미겔>은 콜럼버스로 시작된 세계화 500년 특집에서 기독교 선교를 뛰어 넘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승리를 평가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크램린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다”

유럽의 자본주의 문명은 기독교 선교희망과 함께 출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맘몬)이라는 보편적 문명이다. 그렇다보니 세계는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을 상황에 이르렀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있을 정도로 돈의 위력은 크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물든 교회도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켰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돈이 최고인 시대가 됐다.

분명한 것은 돈이 있어야 교회도 운영하고, 선교도 할 수 있다. 가난한 이웃도 도와 줄 수 있다. 교회직분도 신앙이 결정하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장로도, 권사도, 안수집사도 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총회장도, 감독도, 노회장도, 지방회장도 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결정하는 시대이다. 돈이 있어야만 연합단체장도 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큰 교회에 부임 할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세습도 가능하다.

사회나, 교회나, 돈이 신분을 결정한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너무 풍성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져 빈부의 격차가 심각하다. 특히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부자나라는 더 부자되고, 가난한나라는 더 가난해진다. 세계 부의 80%는 북반구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남반부의 사람들은 20%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이 안에서도 빈부의 격차는 심각하다. 북반구의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데, 남반부의 사람들은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생활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만들어낸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제3세계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계은행과 IMF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무기를 사는데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안타깝다. 성서는 하나님의 교훈을 잊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총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함께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수렴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미래를 약속받는다. 오늘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고단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공동체로 고백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삶이 풍성해진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분명하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죄인들과 사귀었고, 잃어버린 자와 소외단한 자를 항상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다. 코로나19 펜데믹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해진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해야 한다. 이럴 때 고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함께 풍성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버림받은 자들의 고통 속에 그리스도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리고 우리가 이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가 과거 가난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풍성한 삶을 위해서이다. 우리가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예장 호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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