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서시

나무가 말한다
나는 없다고 그래서 나무라고

남을 나무라지 아니하고
나무 자신도 안 나무란다

비오나 눈오나 바람 불어도
나무의 존재는 철학적이다

-시집 『77힐링시선집』에서

* 박재천 시인: 시집 『존재의 샘』. 『조재의 빛』. 『존재의 마음』 등 9권
수상 목양문학 대상 한국창조문학 대상 총신 문학상 등 다수

▲ 정 재 영 장로
 언어유희를 통한 존재 탐구의 담론이다.

첫 연 나무는 나(我)와 없음의 무(無) 합성어다. 형상을 가졌으나 존재하지 않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다. 나무는 하늘로 성정하고, 옆으로 퍼진다. 뿌리는 땅으로 들어간다. 즉 천지를 두루 연결되어 있는 존재다. 그럼에도 없음의 이미지 나무는 새로운 착상이다. 남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이다 첫 행 진술은 나무는 시인 자신의 정서적 노출이며 가치관의 폭로다. 즉 시인의 존재론적 고백인 것이다.

2연에서 그 연유를 진술하고 있다. 자신에게나 타인을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무라는 말은 또한 자신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언어유희다. 즉 남을 꾸짖는 것은 어떤 윤리나 가치의 기준에서 미달할 때 일어나는 행위로, 그 기준이 사전에 존재하여야 한다. 나무라지 않는 것은 자신의 연약성을 살펴 타인에게 역지사지의 입장을 보이려는 것이다. 나무는 자기 자리에 평생 서 있기만 하면 된다. 즉 타인의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과욕에 대한 욕망으로 자학하지 않는다. 없음은 비움을 뜻하기도 하는 면으로 추론해 본다.
마지막 연에서 비움의 자아 실천은 환경이나 상황의 조건에 가변적인 것이 아님을 말한다. 여기서 철학적이라는 말은 신념을 뜻하는 것으로, 더 확장해 해설하면 신앙이라는 종교적인 자세도 타당성을 가진다.

이 작품은 어느 한 부분에서도 종교적 언어를 발견할 수 없다. <천상적 이미지>를 <지상적 이미지>로 바꾸는 현대시 특성을 알기 때문이다. 신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도성인신이라는 용어도 시창작론과 같다. 시는 설명하는 것 아니라 말로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라서 그렇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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