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평화회의(상임대표=박경조 주교. 성공회)는 제106회 기후환경문제 중심의 평화포럼을 지난 21일 대전 광수사에서 ‘문명의 위기와 종교’란 주제로 갖고, 유일한 생명 공간(오이코스)인 지구 시스템의 붕괴가 인류세가 맞을 미래를 조망했다.

이정배 감신대학교 교수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명의 위기 그리고 기독교 신앙’이란 주제 강연에서 “1990년 세계교회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명제를 내걸고 JPIC, 정의, 평화 곧 창조질서의 보존을 자신들 공의회의 주제로 삼고 그 해결책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기독교 구원(정신)은 요원하다”면서, “자연은 자본을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서 수탈과 정복의 대상(물질)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일 역사는 기독교가 자본주의를 기독교화 시키지 못했고 자본주의가 기독교를 자본주의화 했다고 평가할 것이다. 서구 기독교 문명국가라는 미국의 수장이 북유럽의 한 소녀(툰베리)의 질타를 받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구생산 네트워크를 멈춰 세웠다”고 전제하고, “모두가 코로나 이후 시대를 걱정한다. 지금처럼 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인류가 쌓은 부(富)가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현실을 경험하고도, 과거회귀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수 십 만의 사람들의 목숨 값을 제대로 치룰 생각이라면, 우리는 다른 세상, 다른 문명을 꿈꿔야 옳다. 불확실성을 벗는 길은 지금껏 꿈꿔 인습화된 욕망을 비울 때 가능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또한 “과거처럼 탈 결핍 시대를 꿈꿔서는 결코 안 된다. 낮은 출산율을 두려워 할 이유도 없다. 저성장을 오히려 새로운 표준으로 여기는 사회를 기대한다. GDP위주의 시회로 돌아가는 것은 무너질 바벨탑을 새로 쌓은 일에 불과하다. 주식시장과 이윤의 좌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기에 인류 미래는 ‘성장’에서 ‘축소(수축)’로 가치를 달리 설정해야 옳다”면서, “축소사회는 지배가 아니라 관계, 이익(투쟁)이 아니라 공감력(연대)을 바탕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이다. 여기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고 조물주가 ‘참 좋다’ 환호하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미래를 조망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피안적 천국신앙도, 차안적 진보신앙도, 낮선 것이 현실이다. 종교는 문명전환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즉 기독교 신앙은 이를 앞서 실천할 때 다시 살 것이다. 쉽지 않겠으나, 우리를 쟁으로 내몰았던 신자유주의, 일상을 지배했던 이기적 자본주의와의 이별을 백사천난한 과제라 여기며, 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한다”면서 “금번 코로나 사태를 문명전환을 위한 하느님의 희년(禧年) 선포라 이해하고 싶다. 마침 NCCK는 1995년 이후 올해를 희년으로 재차 정한 바 있다. 절벽 같은 세상을 평평하게 되돌리려는 하늘 뜻을 찾아야 옳다”고 절벽 같은 세상을 평평한 되돌리려는 하늘의 뜻을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성공회 이우송 신부는 “인간을 숙주 삼는 야생(자연)바이러스로 세계가 펜데믹 상황에 이를 줄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다. 1929년 세계 대공황보다 그 폐해가 훨씬 크다 하니 이제 인류는 자본세가 초래한 혹독한 결과와 마주하게 됐다. 체제변화 없이, 거대한 전환 없이 인류생존을 바라던 시기는 지났다. 뼈 속 깊이 자본화된 기독교 역시 자기 미래를 걱정해야 옳다”고 인류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가 재앙으로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신부는 “역사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삶의 터전인 대자연을 파괴하면서 더 편리하고 화려해졌다. 인류역사상 지구촌을 패닉 상황으로 몰고 간 ‘코로나19’의 등장은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훼손한 인간의 업보라고 한다. 가만 사실에 있어서는 시그널에 불과한 것으로 현대 문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 인간의 죄를 비판했다.

또 이 신부는 “인간이 만든 최첨단 문명은 절대 대자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강행해왔다. 하지만 이겨도 지는 전쟁이었다. 그동안 인류의 삶을 되돌아보면 인류역사상 하느님, 상제님, 부처님의 말씀을 예탁 받은 수많은 예언자들에 의해, 그리고 미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경고와 호소는 환경파괴의 강도만큼이나 거듭되었다. 하만 자본의 논리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면서, “지구촌의 환경운동도 해를 거듭하며 늘어갔다. 하지만 자본가들과 결탁된 국가권력은 애써 이를 무시했고, 소비를 부추기고 자본가에 낚여 소비자들의 편리함의 추구는 스스로가 그간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기를 자초한 것으로 하늘의 진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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