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희 목사.

성도는 항상 종말을 생각하고 종말을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이유는 종말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들에게 던지시는 말씀이지만, 성도들도 예수님이 원하는 청지기 즉 목회자가 어떤 자들인지 분별할 수 있기에 이 말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는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지구에는 사계절이 존재한다. 봄이 되면 벚꽃, 철쭉꽃, 목련 등 봄꽃이 아름답게 피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 산과 들에는 새싹이 자라나 싱그러운 생명력을 자랑한다. 여름이 되면 꽃이 지고 가을에 열심히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 한다. 사람 또한 더워진 날씨에 얇은 옷차림을 하고, 겨울이 오면 쌀쌀해진 날씨에 맞게 입는다. 자연이나 사람 모두 계절에 맞게 분별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우리의 영적인 신앙도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잘 분별하여 때에 맞게 준비해야 주님에게 칭찬받는 청지기가 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 모든 교회들과 주의 종들, 성도들은 영적으로 어느 때 인지를 인지하고 그것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가? 성찰 할 중요한 시점이다. 주의 종들은 말씀에 비추어 시대를 분별 해 성도들이 예수님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복장은 헐렁해서 일 하기 위해 허리에 띠를 매야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허리띠를 풀었다. 그래서 허리에 띠를 띠고 있으라는 말은 일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시에 충성된 종은 주인이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주인이 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이 종의 일은 언제 끝날까?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다. 허리에 띠를 띠고 있으라는 것은 복음적으로 주의 종들은 항상 진리의 허리띠 즉 생명의 말씀을 항상 허리에 두르고 있으라는 뜻이다. 또한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말은 열 처녀의 비유(마 25:1-13)를 연상케 한다. 등불을 밤새 켜기 위해선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다. 등불을 켜고 있으라는 말씀은 복음적으로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는 밤에 깨어 있어야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오후 6시부터 아침 6시까지의 시간을 넷으로 나누었다. 이경은 밤 9시~12시, 삼경은 밤 12시부터 새벽 3시를 말한다. 주인이 늦은 밤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가장 피곤한 시간에 깨어 기다려야 한다. 예레미야애가 2장 19절에 보면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라고 나온다. 원수가 나를 공격할 때 밤 초경에 일어나 기도하라고 한다. 사사기 7장 19절에 보면 기드온이 이경 초에 일어나 미디안 적군을 공격한다. 사무엘상 11장 11절에는 사울이 새벽에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 암몬 족속을 쳐서 승리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떤 일이 있을 때, 한 밤 중에 다른 사람들이 깊은 잠을 잘 때 깨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적 사단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24:29~30, 막13, 막24:20, 눅21:25~28절을 보면 예수님 재림의 광경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이미 성경에 예언 되어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 즉 맡겨진 성도들에게 때에 따라 말씀을 먹이는 자가 돼야 한다. 성도는 때에 따라 알맞게 던져주는 강단의 말씀을 온전히 먹고 깨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는 모두가 돼야 한다.  

분당횃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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