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 잘 믿고 이 땅(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자녀)의 복을 누리다가 종국에는 ‘죽었다’는 등의 표현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별 관심 없이 전통문화의 장례식(葬禮式) 틀 속에 생명[生命, 생동(生動)하는 신앙(信仰)]의 기독교를 죽음[사망(死亡)]에 가두어 놓았다. 물론 전통문화 가운데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은 많다. 하지만 기독교(개신교)의 구원[救援, 구속(救贖)]과 관계된 성경(聖經)이 지향하는 표현들로 용어들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근조’(謹弔), ‘삼가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삼가 조의(弔意)를 표합니다’, ‘영면(永眠)에 들어가셨군요’ 등의 위로(慰勞)는 적합한 것일까? 먼저 용어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 근조(謹弔):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슬픈 마음을 전함
■ 명복(冥福):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란 뜻으로, 기독교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다.
■ 조의(弔意): 남의 죽음을 슬퍼함
■ 영면(永眠):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말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의 사후 행복을 비는 ‘불사’(佛事)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용어들은 기독교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또한 ‘소천(召天)하셨군요’ 등의 위로(慰勞)는 적합한 것일까? 소천(召天)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하늘)께서 부르셨다’고 할 것인가? 물론 그 함의(含意)는 다양하고 폭도 넓겠지만 ‘구원의 서정’[救援의 序程(order of salvation)]을 생각하면 ‘소천’(召天)이라는 표현에서 그 시점이 애매모호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신앙적으로 알맞은 용어가 아직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별 의식 없이 이런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소식을 전하거나 위로의 말을 건넬 때도 신앙적이어야 한다.

(1) 인사말 = 성도일 경우의 예시(例示)
거룩한 안식(安息) 중이신 줄 믿습니다 = 성안(聖安)
거룩한 안식(安息) 중이심을 믿으므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성안신위(聖安信慰)
부활의 믿음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부활신위(復活信慰)
부활소망의 믿음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부활소망신위(復活所望信慰)
부활소망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부활소망(復活所望)
부활신앙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부활신위(復活信慰)
영생의 믿음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영생신위(永生信慰)
영생복락의 믿음으로 위로 받읍시다(합니다) = 영생복락신위(永生福樂信慰)
거룩한 하나님 나라(하늘나라, 천국)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더 좋은 본향(本鄕)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고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함께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葡萄酒)를 받으신 후(後)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靈魂)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다음호에 계속)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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