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 받은 은총에 응답해야 한다.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이다. 복음의 빛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늘의 소리는 마음이 정화된 자만이 들을 수 있다. 빛은 스며드는 성질이 있다. 빛은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 희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복음의 빛으로 나타나며, 구별된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성숙한 인간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복음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 헌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빛을 잃어버려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인간세상을 혼란과 고통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소금의 맛도 잃어버렸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율법에 갇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 주었다. 복음을 믿고, 세상 속에서 빛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 것이다.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은 자유인으로 모두를 존중한다. 복음의 빛은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해도 희망을 갖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곤궁한 삶에 처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드리기 때문에 희망을 갖는다.

오늘 비록 가난하지만 내일은 해가 뜬다는 희망이 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 밑에서 해방돼, 눈앞의 생존의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먼 미래에서 생존의 문제를 찾으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쫓다가 낭패 보기 일쑤다. 이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경우도 있다.

사실 종교단체들은 눈앞에 있는 것에 급급하다가 종교집단이기주의에 빠지곤 한다. 모든 집단들은 이웃 집단을 무너트려 자기 집단을 키우기에 바쁘다. 이로인해 갈등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난다. 성서는 자신의 집단을 무너트리고, 새로운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며, 자신에게 부딪히는 일들을 이웃의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종교집단은 무조건 따라 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꿈을 주셨다. 헌데 오늘 한국의 종교집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에서 이탈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집단에서는 선한 것을 기대 할 수 없다. 어디에서도 서로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찾아 볼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없다. 오직 나만 있다. 우리집단 만이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사회와 종교집단은 욕심이 가득한 종교지도자와 정치인, 잘난 스카이만 있다. 인간됨이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인간됨은 개개인의 깊이와 넓이에서 찾아야 한다.

이들이 모여 품격 있는 나라가 만들러지는 것이다. 종교 간의 배타성이 만연하고, 정쟁만을 일삼으며,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오늘 대한민국은 품격 있는 나라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인간됨이 덜 되었기에 욕심이 넘치는 정치인과 배타적인 종교인, 줄을 세우는 교육자만 곳곳에서 넘쳐나고 있다. 오늘 신종 ‘코로나19’는 분명 이 민족에게 몰아닥친 재앙임에 틀림없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종교단체가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필자 역시 여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2020년은 역사 속으로 묻혔다. 신축년 새해를 맞은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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