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두 사람은 성막의 설계와 건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지혜와 총명과 지식에 영성까지 두루 갖췄다(출 31:1-6). 브살렐은 특히 요셉, 발람, 여호수아와 더불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네 인물에 속한다. 오홀리압 또한 뛰어난 기능공으로서 세공과 조각은 물론 각종 실과 천을 활용한 수공예, 그리고 목공 능력 등 다재다능한 장인(匠人)이었다. 왜 그들이 성막 건립을 위해 선택되었는지, 출신 성분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평가받는지 등 랍비들의 해석은 꽤나 활발하다.

브살렐은 이스라엘의 최대 지파 유다 사람이며, 오홀리압은 가장 미약한 단 지파 출신이다. 단은 라헬의 몸종 빌하의 다른 아들 납달리와 함께 이스라엘의 작은 지파에 속한다. 대표적 영웅으로 삼손을 꼽을 수 있으나 단 지파는 최북단에 위치하여 거리상으로 소외되었을 뿐 아니라 존재감이 미미하다. 그럼에도 유다 출신 브살렐과 단 지파 오홀리압이 대등하게 언급되는 것은 성막 건축이라는 대의 앞에서는 고귀한 인물이나 미천한 자나 동일한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교훈을 반영한다(욥 34:19).

야곱의 두 아들 유다와 단은 공통적으로 ‘사자 새끼’ 불렸다(창 49:9; 신 33:22). 야곱은 죽기 전에 12 아들을 축복하며 유다의 용맹을 사자 새끼로 비유했다. 그런가 하면 모세 역시 단 지파를 바산에서 뛰노는 사자 새끼로 상징한 바 있다. 이렇듯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사자 새끼(lion cub)로 비견된 것은 두 인물의 강인하고 용감한 지도력을 인정하는 소망과 기대를 담은 것이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성막 건축에 발탁된 것은 오합지졸 이스라엘을 가나안까지 안전하게 이끌게 하려는 책임감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장차 오실 메시야를 ‘유다 지파의 사자’로 표상한 이유도 종말에 사자 같은 용맹함과 강력한 통치력을 연상했기 때문이다(계 5:5).

한편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과 이방인 히람의 협력으로 건립된다(왕상 5:12). 솔로몬은 브살렐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다. 그러나 두로 사람 히람이 성전 건축에 참여한 것은 놀랍다. 히람은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겸비한 인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왕상 7:13-14). 히람의 아버지는 두로 출신이나 어머니가 납달리, 또는 단 지파의 여인이니 이스라엘 방계 혈족이다(대하 2:14). 단과 납달리는 둘 다 라헬의 몸종 빌하의 아들이다. 곧 솔로몬 성전의 완성은 모든 이스라엘의 참여는 당연한 것이었고 가까운 이방인들까지 함께 일궈낸 결과물이다.

성막 건설의 공이 브살렐과 오홀리압이라는 유다와 단 지파에게만 귀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자칫 놓치기 쉬운 익명의 기능공들과 수많은 인부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출애굽기는 ‘기술 있는 모든 사람’을 일일이 적시하여 그들의 공헌을 기억한다. 조각, 도안, 실 공예 등 여러 가지 정교한 작업에 참여한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성막 건립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한 마음으로 이루어낸 성과물이며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충일하게 된다(출 40:34).<Shemot Rabba 40:4>

이렇듯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성막을 건립하고, 솔로몬과 히람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한 사실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가장 고귀한 인물과 가장 비천한 사람의 협력은 놀라운 성취와 향상(synergy)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장차 오실 메시야는 유다와 단 지파의 결합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믿음이다(Midrash Aggadah Gen. 49). 성막과 성전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연결하듯 메시야는 현세와 내세를 이어주며, 성과 속을 아우른다. 그러니 메시야의 탄생은 두 ‘사자’의 결속과 열두 부족의 절대적인 지지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독교 전승은 사뭇 다르다. 즉 나사렛 예수는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이며(마 1:3, 16; 눅 3:23, 33) 어머니 마리아는 레위 지파다(눅 1:36). 외경 <야고보 복음서>는 마리아 또한 유다 지파 요아킴과 안나의 딸로 소개한다. 요셉은 유다 지파지만 마리아는 정작 ‘미천한 여종’이라고 낮춘다(눅 1:48). 예수의 높은 신분은 마리아의 겸양과 낮은 자들과 함께 함으로써 ‘성전보다 더 큰 이’라는 메시아적 상승을 이끈다(마 12:6). 곧 브살렐과 오홀리압의 혈통적이며 물질적인 협력을 넘어 영적이며 성스러운 연합을 이끌어낸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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