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성 목사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장에는 악한 세력들이 끊임없이 침입하여 들어온다. 성경을 통해서, 현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악한 세력들과 죄악들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사람들에게는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 오직 사람에게 주신 유일한 희망은 매일 새롭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도록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뿐이다. 성령은 여러 방편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힘을 제공해 주셔서 믿음을 창조하며, 거룩한 삶을 격려하고, 새로운 능력을 제공한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스캇 올리핀트 교수는 새로 펴낸 책, 「언약적 변증학」에서 이제 일상의 대화에서도 복음을 설명하려면, 오히려 “통역”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고 옹호하려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을 거부하고 이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점점 더 흉학해지고 있다. 이성으로 다듬어지고, 더 교육을 잘 받으면,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는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막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권위 해체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무정부주의자들처럼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인권을 짓밟는 비도덕적인 죄악의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각박한 세상의 풍조가 극심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스 정부의 추락과 함께 몰려나온 시위대들을 보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다행스럽게 IMF 금융위기를 넘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한국에 그런 위기가 찾아온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하려 할까?

세상인심이 사나워진 요즘에도 그런 애국심을 발휘하고자 할까? 등골이 오싹해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세상을 바꿔놓았다. 세상이나 교회나 극심한 혼돈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안정된 기관이나 발전하는 국가가 별로 없다. 상당한 역사가 있는 교회들마저도 연합과 단합이라는 것이 더 어렵다.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미덕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 주위에서는 “그 분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 하였습니다.”하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교회를 떠나기로 작정하였다는 낙심된 말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교회 안팎에서, 특히 기독교 지도자들의 말을 놓고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에는 정치인들에 대해서 하던 말인데,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입에서 불신의 대명사처럼 오르내린다.

한때 세계에 자랑거리처럼 말하던 초대형 교회들이 더 이상 교회의 모델이 아니다. 최근 한국 초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거의 범죄자들 수준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독교 교계의 지도자들이 추락하고 말았다. 교회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불러일으켜 주어야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의심의 대상이요, 불신을 조장하고 말았다.

전 세계 적으로 이름난 기독교 집회와 총회들이 한국에서 개최된다고 하는 데, 도대체 무엇을 하는 모임이라고 하는 것인지 서로 믿어주지 않는다. 과연 그 엄청난 재정을 어디에서 조달하여 행사를 주최할 것인지?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지난 수 십 년 사이에 교회처럼 사역하는 ‘비정부 비영리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성장했다. 그 동안에 기독교 연합기관이라 칭하는 자칭 중요한 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각종 선교단체와 성경공부 모임, 부흥 세미나, 그 수를 셀 수없이 많이 생겨난 기독교 단체들이나 연합기관들의 간부들은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회장이라는 직함이 많은 단체들일수록 믿을 수 없다. 무슨 대표회장이 그리 많은지, 공동회장이나 상임회장이나 선임회장 등 이름들도 거창하고, 거추장스럽다. 미덥지 않은 것은 이런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기독교 신앙은 볼 수 없는 하나님, 손으로 만질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근거로 한다. 보이지 않기에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류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외에는 달리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전달하는 자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나면, 교회 전체가 균열이 생겨서 불신앙과 불평들이 봇물처럼 터져버린다 (창 3:14-15). 지금 한국교회에 쏟아진 악취들과 더럽고 추한 냄새들은 그토록 깨끗하리라 기대하던 신뢰를 허물어 버린 데서 나오는 것들이 많다.

누가 이 지경으로 추락해 가는 한국교회를 책임질 것인가? 지금도 단체의 장으로 나서서 악취를 풍기고 있으면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들도 많다. 결코 반성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절망에 빠트리는 지위에 오른 지도자들이 절망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공공연히 드러난 이단들이 교회에 대한 신뢰를 허물어뜨렸다. 이제 정상적인 교회 지도자들이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하면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된다.

우리가 지금 다시 정신 차려서,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서 불행하게 되었는데, 그 원인을 모르는 자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우리의 희망,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만 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6).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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