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COVID-19로 어려움이 있지만, 가슴의 빛을 계속 지펴라!

이제 손과 발로 드는 촛불이 아니라 가슴으로 촛불(빛)을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

촛불을 켜야 하나? 촛불을 꺼야하나? 하는 논쟁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종교계의 갈등이 생기고 나아가 어떠한 불행한 상처들을 품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가 된다.

그러나 촛불은 밝혀야 한다. 가슴에 지펴야 한다. 그리고 손과 발은 우리의 본연의 자리에서 활동하게 하자. 가슴에 리본을 달고 의사 표시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일터에서의 하는 일들은 멈추지 않도록 하자! 정의와 진실은 매우 소중한 것이기에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지 않은가?” 하는 외침이 있다 해도,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국민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 왜? 그 일로 인해 눈물과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는 한량없이 아량을 보이고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아니하면 날카로운 칼날에 죽거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야 어디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행동이 만행, 횡포로 단 한 사람의 억울함도 발생하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억울함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자들이 횡행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으 것이다.
그러므로 가슴으로 외치는 촛불이 꺼진다면 억울한 사람은 수 없이 발생할 것이며, 그 중 에 우리가 포함 될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나 자기 가족을 위해 집단을 이용하거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칼을 휘두르는 자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국민을 이용할 뿐 국민을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조각가가 있었다. 어느 정도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초청을 받았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선뜻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 조각가는 초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큰 나무 그늘 아래서는 어떤 것도 잘 자라지 못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큰 나무 그늘에 있어야 그늘도 더 시원하고 비도 더 가릴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큰나무 아래서는 조금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크지는 못 하겠지.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가 로댕(Francois Auguste Rene Rodin)의 초청을 거절했던 이야기이다.[마시무스의 “지구에서 유쾌하게 사는 법” (주)웅진씽크빅]

그러나 당신은 혹시 남의 그늘을 찾아 지성과 신앙 양심을 팔며 비굴함을 보이면서까지 그늘을 찾고 있지 않은가? ‘지성들이여! 지도자들이여! 위정자들이여! 큰 나무 밑에서 누리려고만 말고 큰 나무의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 그늘이 되어 주어라.’라고 외치자! 특히 기독교계 설교자나 복음 전도자들뿐 아니라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의 편엽함, 비굴함 등이 없는지 돌이켜 보자!

옛말에 “망건 쓰자 파장이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장에 가려고 망건을 쓰면서 준비를 하는데 그만 장이 파하고 말았다는 뜻으로, 너무 오래 꾸물대다가 볼일을 보지 못하게 된 경우를 비웃어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향기를 잃어버리기 전에 가슴의 빛을 밝히자!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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