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죽음이 가까이에 와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죄에서 해방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죄에서 해방받기 위해 많은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인들의 고민 역시 그들이 말하는 108 번뇌에서 해방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번뇌의 근원이 욕심이며 그러한 것들을 벗어버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힌두교 인들 역시 수백만이나 되는 그들의 신에 의지하여 그들의 죄에서 해방 받기를 원합니다. 세계 각 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에서 해방 받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더 선한 일에 매진하기도 하고, 또 그들이 믿는 신이 그들의 죄를 씻어주기를 원하여 제물을 드립니다. 인도의 많은 사람들은 강물에서 몸을 씻으면 그들의 죄가 씻겨져 내린다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적은 종이를 태우기도 하고, 열기구에 띄어 보내기도 하면서, 그들의 죄에서 해방 받으려는 갖가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이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대면서, 2000년 전의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는데, 이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확고한 믿음의 표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있었고, 또 신앙의 모델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아브라함이 반드시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 또는 신실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앞서 3장 28절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말하면서, 본문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어떻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모든 행위에는 자랑, 즉, 교만이 따라옵니다. 행위와 자랑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입니다. 행위에 근거를 두면, 서로의 비교도 따라오고 교만도 따라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그는 세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교만했습니다. 행위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차별과, 자랑, 교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행위를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믿는 신자들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라고 말하면, “무엇을 잘 했다고 하늘나라에 가느냐” 며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잘 해야만 하늘나라에 간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믿음이란 것은 행위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았을 때, 그가 하나님을 불신했던 경우도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죄와 죽음으로 인한 영원한 심판이며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장 합동해외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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