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사람들이 옛이야기를 할 때 고생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어려서 나무 베고, 풀 베는 등 고생한 이야기, 군대에서 고생한 이야기 등을 하지, 즐거운 이야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의 자랑이 ‘얼마나 고생 했는가’라는 것입니다. 또 전도서 1장 8절에는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만족이 없습니다. 지하 단칸방에 살던 사람은 햇볕 드는 집에 살기를 소망하지만, 막상 햇볕이 드는 집으로 이사 가면, 이젠 자기 집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아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면, 또 시간이 지나 그 집이 작아 보이고, 더 큰 아파트에 살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재산이 99억인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겠다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1억만 더 있어서 재산이 100억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만족이 없음에 대해 전도서 2장에서 재산을 많이 쌓고, 또 너무도 아름다운 정원과 노래하는 사람들을 두었고, 천 명이 넘는 아내들을 가졌으며, 책도 많이 썼던, 더 이상 누릴 것이 없었던 그가 하는 말은, 그 모든 것 후에 남는 것은 그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무익하다는 것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생이 본래 이렇게 허무한 것일까요? 원래 인생은 허무하도록 되어진 것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고난 가운데 살도록 정해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행복인지 잘 모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주님 안에서의 삶이 헛되다 거나, 즐겁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기쁨과 생명, 평안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짐 진 모든 자들에게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쉼이 없는 인생에게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위한 삶은 헛된 삶이 아니며, 주님을 위한 수고 역시 헛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고전 15:58, 빌 2:16) 이는 솔로몬이 한 말과는 너무도 다른 말들입니다. 또한 성경은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을 복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계 14:13) 왜냐하면, 주님과 연관된 삶은 의미가 있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과 가까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반면 주님과 멀어졌을 때가 괴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장 합동해외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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