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미국 북장로회가 중국과 일본과 인도 선교를 시작한 이후에, 한국에 대해서 선교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은 1883년에 이르러서다. 일본 주재 선교사들이 본부에 보낸 편지 가운데 선교사 파송의 가능성들을 최초로 상의하고 있었음이 들어있다. 특히, 한국인으로 조정의 신임을 받아서 일본에 유학하고 있던 이수정 (李樹廷, 1842-1886)에 관련된 소식이 녹스 선교사 (George W. Knox, 1853-1912)에 의해서 미 북장로회 선교부에 여러 차례 보고되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본부 총무 엘린우드 박사는 1883년 5월 21일자 편지에서 일본의 녹스 선교사와 중국 산동의 네비우스 선교사에게 한국에 대한 선교 가능성을 상의하였다. 엘린우드 박사는 중국 산동성의 선교사 헌트 코르벹 (Huntter Corbett, 1835-1920)과 한국 선교사 파송을 상의하였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되었음을 알게 하는 또 하나의 반증은 프린스턴에서 발행되던 북장로회 선교부 월간지, 1883년 11월-12월호 첫 부분에 한국의 역사와 풍습을 소개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선교잡지에 한국에 관련된 글, “코리아, 은둔의 나라”가 실렸던 것은 이 무렵에 선교대상국가로서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책은 1882년에,「코리아, 은둔의 나라」(Corea: the Hermit Nation)라는 제목을 출판되었는데, 그 후로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한국선교를 소개할 때마다 이 책의 제목을 인용하여 자신들이 머무는 곳은 “은둔의 나라”라고 부르게 되어졌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그리피스 (William Eliot Griffis, 1843-1928)는 뉴저지 러트거스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1870년부터 일본에서 교수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1877년에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개혁교회 목사로서 1903년까지 뉴욕 근교와 보스톤에서 목회사역도 감당했었다. 풍부한 여행경험과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는데, 일본, 중국, 한국, 유럽 등을 여행하여 무려 50여권에 달하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일본에서 선진 문물을 습득하고 있던 이수정은 한국 선교가 성공하려면 일본인들이 아니라 미국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수정은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한국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일본 교회가 선교하려고 앞장서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여러분의 나라는 기독교 국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보내주지 않으면, 나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교사들을 신속히 파송하리라 생각하며, 또한 그 가르침들이 주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으면 어떨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는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여러분들이 파송하는 선교사들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수정은 1884년 4월 29일, 미국 북장로회 소속 녹스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아 개신교인이 되었으니, 자신의 조국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있어서 남다른 열정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미국 성서공회 소속 루미스 (Henry Loomis, 1839-1920)의 도움으로 이수정은 한글성경의 번역작업에 착수하여 1884년 《현토한한신약전서(懸吐韓漢新約全書)》를 출판했는데, 기존의 한문 성서에 한글로 토를 단 것이다. 본격적인 한국어 번역본으로 처음 나온 것은 《신약전서 마가복음언해》였다. 초기 개신교 선교사 아펜젤러, 언더우드는 이수정에게 한국어를 배웠으며, 조선 내 선교 활동에 그의 번역본을 사용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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