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이른 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복수법(lex talionis)은 한 동안 잔인하고 미개한 피의 복수라 여겨왔다. 하지만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법정신의 진보로서 법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 뿌리를 둔 이 법은 그보다 3-4세기 이른 우르남무(Ur-Nammu) 법전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우루남무 법전에 의하면 법 정신과 원칙이 공정하게 준행되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재화로 대신할 수 있는 법의 남용 가능성이 살아있다. 함무라비 법전은 동일한 피해로 되돌리게 함으로써 얼핏 섬뜩한 복수를 조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범죄로 인한 사적인 복수를 막고 죄형법정주의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같은 법 정신은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에도 유지된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갚을지니라”(출 21:23-25). 곧 동해복수법이 출애굽 공동체 이스라엘을 견지하려는 규범이자 출발점이었다(레 24:20; 신 19:21). 형법의 조항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며 철학이었다. 이후 유다 왕국도 ‘눈에는 눈’으로 대표되는 계율을 근간으로 삼았다. 시인과 지혜자는 사람의 행한 대로 돌아온다며 교훈하였고(시 62:12; 잠 24:29), 포로기를 전후한 예언자들 역시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이라”며 경계하였다(옵 1:15; 렘 25:14; 겔 18:30). 이렇듯 대등하게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청동률(Bronze Rule)이라 일컫는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사렛 예수는 보복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끊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눅 6:31). 언필칭 황금률(Golden Rule)이다. 예수의 선언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교훈이 아니다. 황하의 탁류가 땅속 깊이 잠류하여 맑은 물이 되듯 이스라엘은 혹독한 바빌론 포로기와 혼돈의 파고를 겪으면서 청동률을 숙성시켰고 마침내 한 위대한 스승을 통하여 황금률로 분출시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포로 귀환 이후 쓰이기 시작한 타르굼은 아람어 해설 성서다. <타르굼 레위기>는 이웃 사랑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을 사랑하라.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타르굼 19:18). 유대인의 스승 힐렐은 더욱 단호하며 간명하게 가르친다. “네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것이 토라의 핵심이며 나머지는 해설이다”(Hillel, Sabbath 31). 탈무드의 교훈도 뒤따른다: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라”(Tobit 4:15; cf. Didache 1:2; 집회서 31:15). 그러나 황금률에 미치지 못하기에 백은율(Silver Rule)로 불린다.

근자에는 황금률 대신 백금률(Platinum Rule)이 오르내린다. 즉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라!! 주로 비즈니스 업계에서 소비되는 상업적인 뉘앙스가 강하지만 귀담아 들을만한 부분이 있다.청동률은 아브라함의 고향 ‘두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에서 흘러나와 팔레스틴 요단강과 실로암 연못을 적시며 유대 랍비들에게서 백은률로 숙성하였으며, 마침내 갈릴리 호수가의 예수에게서 황금률로 완성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원시 출애굽 공동체를 유지를 위한 법의 근간이었다면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윤리의 출발점이 된다. 청동률의 위대한 진보이며 진화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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