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희 목사.

사회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고 이바지하고자 뜻을 품었다면 정도(正道)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정직하게 바른길을 걷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악한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한자들을 괴롭히고 무너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악으로 갚지 않고 끝까지 용서하며 바른 길을 갈 때 여러 고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람들도 좁은 문, 좁은 길 신앙의 정도를 지킬 때 영적 공격과 어려움을 맞닥뜨린다. 여러 고난에도 끝까지 푯대를 향해 진리의 길을 사수하는 이유는 그것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방을 떠난 후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겨났다.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다른 복음’ 즉 거짓된 교리를 전한 것이다. 이에 그동안 자신의 사도성에 대한 논란은 물론 유대 율법주의자들에 의한 복음의 왜곡에 대하여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경고와 권면 하였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은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수많은 고난의 흔적을 의미한다.(고전 4:11; 고후 4:10-11, 6:5, 9; 11:24-25)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려다 생긴 것이 아니라 참된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선한 군사로써 세상과 싸우다 입은 것들이다. 흔적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 종이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고유한 글씨나 문양을 불에 달구어 짐슴의 몸에 지져서 낸 표식을 의미한다. 율법주의자들은 할례와 종교적인 전통, 관습에 묶여 육체적이며 외형적인 것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을 향하여 바울은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나를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말라.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라고 단언했다.

사도바울은 육체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출신, 학력, 재능, 권력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예수를 만나고 더 이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을 위하여 삶을 살지 않았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수가 걸었던 좁은 문, 좁은 길을 따라 살기 시작했다. 바울이 가진 이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완전하며 영원한 성령의 흔적이다. 온갖 박해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를 수 있었던 사도바울의 충성이 이 흔적에서 기인한다.(마10:38 행13:50 고후11:23-27)

우리는 이 고난의 흔적을 가졌는가? 히브리서 11장 33~40에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산 그들 모두는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사자들의 밥이 되기도 하고, 불에 화형을 당하고, 칼과 톱에 목 잘려 죽고, 심한 고문과 몽롱과 채찍질과 감옥에 갇히고, 궁핍과 화난과 학대를 받았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자신들의 고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의 끝은 무엇인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8) 주님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자들을 위해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시고 기다리신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편한 길, 고난이 없는 길로 가려고 한다. 고난을 피하고 승리한 것을 자랑삼아 간증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진정한 우리의 자랑은 복음으로 인해 새겨진 ‘스티그마타’이다. 지금 내가 복음 때문에 오는 고난이 싫어 넒은 문, 넒은 길 위에 서 있진 아니한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분당 횃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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