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신앙생활기획특집
[김재성 교수] 한국교회의 뿌리와 근원에 대한 탐구 (17)
김재성 교수  |  webmaster@ck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3.29  14:24:0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 김 재 성 교수

 1877년 알렌은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Ohio Wesleyan University) 에 입학하면서 선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1881년 6월 졸업할 때에, 알렌의 대학시절 절친한 친구들 중에는 선교사와 목회자로 지원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 해 9월에 콜럼버스에 있는 스탈링 의과대학(Starling Medical School)에 입학하였고, 1883년 3월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훗날 이 두 의과대학원은 병합되어진다.

알렌은 대학과 의과대학원 과정 중에서도 역시 선교에 헌신적인 분들을 만나서 영향을 입었다. 알렌의 모교회의 담임목사로 오랫동안 시무한 아브람 혼 (Abram D. Hawn, 1832-1912)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알렌이 대학에 들어간 후인 1878년 9월부터 24년 동안 델라웨어 장로교회에서 시무하면서 전도와 선교에 열정적인 목회사역을 남겼다. 알렌이 의료 선교사로 파송되도록 추천하고 후원하였으며, 미국 북장로회 해외 선교부와 접촉하여 성사시킨 장본이다. 혼 목사의 영향으로 델라웨어 장로교회를 다닌 젊은이들 중에서 목회자로 헌신한 사람들이 많았고, 1892년 스노드그래스(Mary A. Snodgrass), 1895년 웰스(Margaret Greer Wells) 그리고 마치(Arthur W.March)가 해외 선교사로 파송되어 활동하였다.

알렌이 1882년 9월 26일자 선교부에 보낸 첫 지망서에 보면, “돈을 벌기 위해 개업하겠다는 유혹이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순히 의료 사역을 하기 위해 선교사로 파송되려 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알렌은 나중에 한국에 들어온 후에, 선교사로서 사역비를 받았기에 일체의 다른 수입은 모두 다 선교부에 반납하였다.

둘째, 중국 산동선교부의 결정과 미국 뉴욕의 선교본부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결정했기에 알렌이 새로운 미지의 땅에 올 수 있었다.

알렌은 1883년 8월 20일에 델라웨어를 출발하여, 9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북장로회에서 정식 임명 절차를 거쳐서 의료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10월 11일상해에 도착했다. 중국 북장로회 산둥선교부에 소속해서 지푸지방에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들 속에서 그의 진로를 한국으로 바꾸어 놓으시고, 엄청난 변화를 열어가는 도구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산동에 온 알렌은 그곳에서 다른 의료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어서 여의치 않고, 아내마저 병환으로 고생을 하게 된다. 어떻게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약 8개월 가까이 방황하고 있었다. 알렌은 상해의 헨더슨 박사 (Dr. Henderson)와 윌리엄 홀트 (William Holt) 등의 조언을 통해서 한국 선교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1884년 4월 14일, 길버트 리이드 (Gilbert Reid) 선교사가 보낸 편지가 중국 산둥지방 지푸로부터 뉴욕 선교본부에 도착했다.

“나는 지금도 조선 선교지의 즉시 점유를 계속 열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견은 일본 측에서, 중국 측에서, 만주 측에서, 그리고 조선 자체로부터 얻은 실정 보고에 의하여 얻은 결론입니다. 나의 의견은 … 선교사로서가 아니라 교사와 의사의 자격으로 선교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사나 의사는 선교를 목표로 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와야 합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김재성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인물 

예장합동 100년 미래 주춧돌 자처한 민찬기 목사

예장합동 100년 미래 주춧돌 자처한 민찬기 목사
예장 합동 서울북부노회 민찬기 목사(예수인교회)가 목사 부총회장 ...
해설
최근인기기사
1
미래목회포럼, 기독교적 관점서 저출산 해법 찾는다
2
새로남교회, 총신 장애학우 위한 장학금 3천만원 전달
3
한국교회 예배 회복과 부흥운동 선도
4
한교연, 1개 교단 및 4개 단체 신규 가입 다뤄
5
“기억하라! 별이 된 304명을”
6
예장 성서총회, ‘4.17 예수 부활의 날’ 성료
7
카이캄 43회 목사안수식…105명의 사명자 세워
8
[이효상 원장] ‘트롯’ 전성시대가 주는 것?
9
‘온전함을 사모하는’ 사랑의교회 글로벌 특새 대단원의 막 내려
10
‘하나님 경외하는 부모가 되는 것’ 자녀양육의 핵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기독교한국신문  |  등록번호: 서울, 아04238  |  등록일자: 2016년 11월 23일  |  제호: 기독교한국신문
발행인: 유달상  |  편집인: 유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유달상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순라길 54-1, 3층(인의동)  |  발행일자: 2012년 11월 5일
02)817-6002, 02)3675-6113 FAX 02)3675-6115
Copyright © 2011 기독교한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k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