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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원장] 영화 ‘자산어보’에 흠뻑 빠지다
이효상 원장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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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08  11: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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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자산어보' 시사회에서 근대문화진흥원 이효상 원장.

최근 화제가 되는 영화가 개봉됐다. 볼만하다. 영화 ‘자산어보(玆山魚譜)’다. 배우 설경구가 주인공 정약전(丁若銓, 1758~1816) 역(役)으로, 그의 형제 다산 정약용(丁若鏞)역(役)에 류승룡이, 그리고 변요한이 흑산도 청년 장창대(張昌大) 역(役)으로 나온다. 이들이 받아들인 서학(西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밑바탕에 깔고, 약전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영화 ‘동주(東柱)’를 예전에 찍은 이준익 감독이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그림 같은 풍경에 사람냄새와 바닷냄새가 물씬 나는 볼수록 진한 여운이 묻어나는 영화다. 칼라 시대를 넘어 3D/4D 시대에 다시 흑백영화를 본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흑백 사진이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感性)을 되살린 참 좋은 영화다.

조선 후기를 살았던 정약전의 책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삼았다. 주자의 성리학을 더럽히고 백성을 현혹하는 서학(西學)을 했다는 이유로, 신앙의 배교자가 되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며 흑산도로 유배 간 약전과 약용, 그리고 그와 함께 훗날 백성을 이롭게 하는 실용서를 쓴 창대와의 우정이 영화 ‘자산어보’의 주요 골격이다.

정약전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차남으로, 조선후기의 유명한 실학자인 정약용의 형이다. 일찍이 ‘성호사설(星湖僿說)’의 성호 이익(李瀷)에게 지도를 받으며 서양의 신(新)학문을 익혔고 이 집안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해 일명 서학으로 불리는 기독교(天主敎)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그 집안과 관련된 인사들은 이승훈, 이벽, 황사영 등이 모두 매형, 처남, 사위 등으로 연결된다. 정조 7년(1783) 생원시, 정조 14년 증광별시에 합격하여 승문원 부정자(종9품)에 제수되었다. 정조는 정약전의 직급이 먼저 급제한 동생보다 낮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 재위 21년 정약용을 곡산부사에 제수하면서 정약전을 특진시켜 사관(정6품)에 제수했다. 약전‧약용 형제의 인품과 탁월한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정조의 애정 어린 배려였다. 그러나 재위 24년(1800) 정조가 독살당하면서 약전‧약용 형제의 관운도, 조선의 명운도 함께 끝났다. 1800년은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해였다. 순조(純祖) 원년(1801)에 일어난 신유박해, 그리고 황사영 백서사건 등이 터지자 수많은 명신들과 함께 약전‧약용 형제도 서학과 신앙을 받아들인 죄목으로 기약 없는 유배길에 올랐다. 이 때 전라도까지 함께 내려간 형제는 나주에서 길이 갈려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갔다.

   
▲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정약용 초상.

흑산도(黑山島)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은 이곳 주민 문순득(文淳得)이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와 중국을 거쳐서, 만 3년만인 순조(純祖) 5년(1805)에 조선으로 돌아오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찾아갔다. 문순득에게서 표류의 전말을 듣고 조선시대 홍어장수표류기인『표해시말(漂海始末)』을 저술(著述)했는데 이는 조선시대판 ‘하멜표류기’다.

순조(純祖) 원년(1801) 제주도(濟州島)에 낯선 배 한 척이 표류해 왔다. 배에는 외국인 5명이 타고 있었는데, 나라이름을 쓰라하니 막가외(莫可外)라고만하여 몰라서 중국 요녕성 성경으로 보냈다. 1802년(임술년, 순조 2년) 10월. 중국 성경의 예부에서 어느 나라사람이 알 길이 없다며 조선으로 다시 보냈다. 그 와중에 5명 중 1명 병사했다. 관청의 건물과 먹거리를 내주고 조선의 풍토와 언어를 익히라 하였다. 그러면서 4명 중 1명 또 사망하게 된다. 1807년(순조7년) 8월 10일. 제주 목사 한정운이 표류인들이 ‘여송인(呂宋人, Luzon(현재 필리핀의 루손섬)’임을 알고, 본국 송환을 상계한다.

이들 표류인을 제주에 표류해온 ‘유구인(琉球人(현재 일본 오키나와)’들과 만나게 하니 유구인 궁평(宮平)이 여송인임을 알아차렸다. 유구사람 통사 경필진이 궁평에게 물으니, 문순득의 표류이야기를 하며 문순득 일행에게 들은 이야기를 회상하며 알려주었다. 여송국과의 외교 소통이 없고, 중국에서 이들을 송출한 예가 있어서 유구인에게 부탁하여 보내라 명하였으나, 유구인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1809년(순조 9년) 6월 26일. 통역관 문순득을 만나게 하여 여송국 방언으로 문답하니 딱 들어맞았다. 비로소 여송국의 표류인을 송환시켰던 이야기를 기술했다.

흑산도에 와서 무서움이 많았던 약전은 창대를 만나 어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삶을 살게 된다. 흑산도의 정약전은 생업도 외면한 채 오로지 물고기 연구에 평생을 바쳐오고 있는 장덕순(張德順) 또는 장창대(張昌大)라 불리는 사람의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안다‘는 말에 도전을 받아 어류에 대해 널리 알려 백성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함께 연구해 이 어류도감을 만들게 된다. 집으로 불러 함께 기거하며 물고기에 대한 공동연구를 계속해나갔다.

그의 도움으로 자신이 평생 관찰해온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론을 붙여 순조(純祖) 14년(1814) 그는 각종 물고기와 해조류를 포함해서 수중생물 226종(種)의 명칭, 크기, 형태, 외형의 특징, 생태, 맛, 어획 시기와 방법 등이 자세히 기록한『자산어보』를 펴낸다. 자산(玆山)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이고, 어보(魚譜)는 물고기 백과사전이라는 뜻이다. 정약전은 흑산도라고 하면 서신을 받아보는 가족들이 무섭게 여길까 싶어 섬 이름을 자산으로 바꾸었다. 그는 『자산어보』서문에서 자신을 ‘박물자(博物者)’, 요즘 말로 하면 과학자라고 표현했다.

   
▲ 영화에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정약전(배우설경구).

영화에서는 창대가 ‘자산어보’보다 ‘목민심서’의 길을 택하여 진사로 공직에 나가게 된다. 창대는 권력이 있으면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약전은 유배생활 16년 만인 순조(純祖) 16년(1816)에 끝내 유배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우이도(牛耳島)에서 자신의 생(生)을 마감한다. 그런데 동생인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중이라 형의 장례(葬禮)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때 정약전의 장례를 대신 치러준 사람이 바로『표해시말(漂海始末)』의 주인공 문순득(文淳得)이다.

조선후기는 실학의 영향으로 백과사전류의 책이 저술된다. 건축, 의학, 과학, 수학, 천문학, 생물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19세기 조선의 지식을 집대성한 서유구(徐有榘)의『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도 출판된다. 이렇게 명작들이 나오자 그동안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매달려 있던 조선의 유학자들에겐 충격이었다. 실학의 영향으로『자산어보』나『임원경제지』처럼 손에 잡히는 실질적인 내용의 책을 저술했던 것은 근대화를 위한 조선 나름의 최선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조선은 이후 쇠락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망국에 이르게 되면서 아쉽게도 이러한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조선시대 유배지에서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자산어보’를,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경세유표(經世遺表)’와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수많은 저서들을 집필했다. 고난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그들과 함께, 순창 군수와 전라감사를 지낸 서유구도 순조(純祖) 6년(1806)부터 헌종(憲宗) 8년(1842)까지 36년에 걸쳐 일평생 집필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길을 열어갔다.

약전과 약용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하나님이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아니었을까. 또한 그들에게 신앙과 순교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주자의 나라 조선’이라는 틀에 갇혀 서학을 못 받아들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그 시대에 “누가 주인이냐”는 약전의 외침은 진한 메아리가 되어 울려온다. 그에게 어보는 어떤 의미였을까. 약용에게 목민심서나 약전에게 자산어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해야 할 일 즉 사명이 아니었을까.

상하(上下)를 따지고, 나와 다름을 거부하는 시대가 조선시대인데도 약전은 자신을 창대보다 낫다고 여기지 않는듯 했다. 창대의 스승이 아닌 '우리 거래하자'라고 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 시대를 앞선 사상이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 시대든 시대 문화발전과 성숙은 다양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를 즐길 줄 아는 수용의 마음과 태도를 가지는데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이는 창의성의 근원이자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표현의 차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고 배려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양함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사회를 함께 이루려는 것이 건강한 시민들의 꿈이었으면 한다.

시인, 칼럼니스트, 서지학자, 근대문화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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