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 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2~24).

하나님은 짐승들을 흙으로 빚으시고, 아담으로 하여금 이름을 짓게 했다. 그럼에도 아담은 외로웠다. 짐승에게서 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잠든 사이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 하와를 만드셨다. 아담은 하와를 보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라며, 기뻐했다. 이래서 가족이 탄생됐다.

아담은 수많은 짐승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짝을 여자에게서 발견하고 사랑 할 수 있었다. 짐승들은 거리가 있고, 다른 존재였다. 아담은 나와 똑같은 존재, 참으로 대화가 통하고, 서로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을 이브에게서 찾았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꼭 맞는 존재, 아담의 마음에 드는 인간을 만들어 짝으로 맺어 주셨다.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며, 창조질서에 속한다. 기독교계가 한목소리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이탈하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이태원서 발생한 ‘코로나19’바이러스 집단감염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는 곧 국민 모두를 또 다시 ‘코로나19’바이러스 공포로 몰아넣었다. 너와 그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을 생각한 결과이다.

남녀 사이의 하나 되는 본능적 갈망은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인지는 몰라도, 인류의 종족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인류의 생명을 유지하는 방편이다. 남녀의 애정은 죽음보다 진하다. 그래서 남녀 간의 애정이 식으면, 자살하고, 살해한다. 모든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 결혼을 하여 아들과 딸을 생산함으로써 죽음을 넘어서서 생명을 실어 나른다. 그래서 남녀의 사랑은 선하고 아름답다. 문제는 현대 젊은이들이 나만을 생각한 나머지 결혼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을 사랑하기보다 짐승을 사랑한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에 속한다.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속하기 때문에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수년 동안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인권법을 적극 반대해 왔고,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인류가 타락한 이후 소유욕과 지배욕이 생기면서, 남녀의 사랑, 섹스는 부끄러운 것, 추한 것이 되어 버렸다. 타락하기 전에는 알몸으로 지냈어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타락한 이후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앞을 가렸다.

오늘 현대사회는 남녀가 자신을 전폭적으로 내맡기고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대가 아니다. 상대를 평가하고 비교하고 의심하며 자신을 숨긴다. 일편단심은 사라지고, 내 마음은 깊은 분열과 갈등만 깊어진다. 이는 남녀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물론, 가정이 해체라는 결과를 낳는다. 진한 애정이 식으면, 서로를 살해한다. 자녀도 살해한다. 나를 개방해 너를 온전히 받아드리지 못하는 결과는 이렇게 아픔만 가득하다.

햇빛중앙교회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