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침탈 당시 초기 한국의 선교사들은 “일본은 보건적으로 깨끗한 나라이다”고 극찬했다. 반명 조선민족에 대해서는 “개같이 사납고, 돼지같이 더럽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130년이 지난 오늘날 <니혼게이자신문>(4월11일자) ‘다이키쇼키(大機小機)’ 코너에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본정부의 대처 등과 관련해서 “일본은 어느새 후진국이 되었나”이란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은 한마디로 국가주의에 갇힌 일본정부에 대해서 도발적인 칼럼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칼럼을 <한국일보>가 분석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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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문은 “디지털‧환경‧젠더‧경제 등 다방면에서 일본이 선진국이라 불리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탄식했다. 그 원인으로 시대에 뒤떨어진 일본의 정치‧행정체제를 지적했다. 이제 이웃나라의 국민들은 이 신문이 탄식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을 선진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기 안에 갇히고, 국가주의에 빠진 나라”라고 비난한다. 이웃나라의 것을 빼앗아 부를 이룬 일본, 한국전쟁을 이용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룬 오늘날 일본이 선진국으로 가기위한 내세울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없다.

일본이 후진국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130년 전 영미 선교사들은 천왕을 섬기는 일본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사실을 몰각해, 일본을 높이 평가했는지도 모른다. ‘다이키쇼키’는 192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익명의 칼럼 연재로 외부필자 50여명이 돌아가며 쓴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필자 이름은 신문사 내부에서도 공개되지 않는다. 익명 칼럼인 만큼 쓴 소리나 대담이 문제제기도 했다.

필자가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느낀 첫 번째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였다. 백신 제조에서 일본은 미국, 독일, 영국, 중국, 러시아 같은 개발국에 끼지 못한 것은 물론 인도 같은 생산거점도 국내로 끌어드리지 못했다. 백신 접종률은 세계에서 100번째다.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도어 전 최고경영자(CEO)도 트위터에 “일본은 백신 후진국”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필자는 이에 대해 “기업도 정부도 눈앞의 이익만 좇는 안이한 ‘이노베이션(혁신)’에만 치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본원적 ‘인벤션(발명)’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필자는 “디지털 후진국도 분명하다”며, “(코로나 감염자) 접촉 확인 애플리케이션은 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신속하게 파악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등 행정의 디지털화가 크게 뒤떨어졌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두 번째로 “고속통신 규격 5G 경쟁에도 참가하지 못했고, 한때 특기였던 반도체는 미국, 한국, 대만에 뒤처졌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필자는 “환경과 젠더, 인권 등 선진국이 지향하는 가치관 면에서도 일본은 뒤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필자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유럽과 중국에 뒤졌고, 전기자동차도 처졌다”면서, “온실가스 저감 목표 설정도 늦고 구조전환을 해야 하는 각오도 부족하다. 성평등 지수는 세계 120위권 후진국이다. 독일이나 뉴질랜드에서 여성총리가 코로나 시대에 활약했지만, 일본에는 여성 정치인이 극소수다. 필자는 20명이나 되는 일본 게이단렌(経団連·한국의 전경련 격) 부회장에 여성 경영자가 겨우 1명 뽑혔다”고 비난했다.

또 필자는 “중국의 인권 문제나 미얀마군의 폭력적 진압 등 인권 이슈에 대해서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서, 그 배경으로 정치와 행정을 꼽았다. 한마디로 “정부가 책임도 지지 않고 창의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일본의 거버넌스(통치체제) 자체가 문제이다”면서,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과학적 정신과 인도주의에 입각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자본주의를 다시 단련하지 않는 한 선진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일본 언론의 연이은 지적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실종된 일본을 본다. 오죽했으면, 아사히신문이 <조선인 태평양전쟁 전범 외면은 일본 국민의 챔임>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일본의 정의를 묻고 또 묻는다’고 말했겠는가.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종됐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에 정의와 양심을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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