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나님의 심판 면치 못 할 것

일본 <니혼게이자신문> 4월 11일자 다이키쇼키 ‘일본은 어쩌다가 후진국이 되었나’ 칼럼 내용처럼 일본은 후진국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보건적으로 깨끗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생명의 존엄성을 그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는 나라를 일컬어 선진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웃 나라와 상생하며, 국민 모두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나라, 양심과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 국민의 아우성을 듣고 행동하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평가한다. 헌데 일본은 여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핵발전소 쓰레기를 바다에 버려 물을 오염시키는 일본,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게서 양심과 정의, 책임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여기에다 미국의 태도는 더욱 얄밉다. 지난 13일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핵폐기물을 이웃국가와 자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겠다고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선진국이라고 극찬했던 일본이 하는 짓이다. 여기에다 이웃나라의 영토를 자국의 영토라고 생떼를 쓰며, 이웃나라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

또한 이웃나라의 소녀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동원하고, 소년들을 전쟁의 소모품으로 이용하고 군수공장과 탄광 등에 강제동원하고서도, 여기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다.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로 아시아의 국가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서도, 여기에 대한 반성, 책임을 지지 않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다시 가기 위해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평화헌법을 폐기됐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본질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심도, 정의도, 책임감도 모두 실종됐다. 오히려 후진국은 이웃국가를 괴롭히지 않는다. 핵폐기물도 바다에 버리지 않는다. 이웃나라를 침략하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전쟁 때문에 원시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부자가 된 나라이다. 한국 신민지 36년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 먹고 산 나라이다. 이런 은혜를 잊는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처지에 놓였다.

대한민국의 친일적인 정치인, 경제인, 학자들은 이런 일본을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일본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오염시키고, 교란하는 국가가 됐다는데 안타깝다.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괴물 속에서 일본은 후진국만도 못하다는 것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일본은 인권이 실종된 나라임을 분명하게 알았다. 태평양전쟁 C급 전범 마지막 생존자인 김학래 옹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서 일본은 정의도, 양심도 실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아사이신문은 김학래 옹의 별세와 관련해서 ‘조선인 태평양전쟁 전범 외면은 일본 국민의 책임‘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김 옹은 포로 학대 혐의로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감형돼 1956년 석방됐다. 석방 후 고향에 돌아가려고 했으나, 친일파라고 낙인이 찍혀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본인 전범들이 다 받는 연금과 위자료를 받은 것도 아니다. 아사이신문은 일본에 양심을 묻고 또 물었다.

김 옹은 가고 싶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친일파로 낙인찍힌 그를 고향이 받아 줄리가 없었다. 분명 일본은 양심도, 정의도, 인권도, 책임감도 실종된 나라이다. 더 이상 일본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유토피아도 아니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기 위해 강한 나라 미국에 아부하는 일본은 나약한 후진국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초기 한국에 온 영미선교사들이 극찬한 보건적으로 깨끗한 나라도 아니다. 방사선 쓰레기를 바다로 흘러 보내 물을 오염시키는 하나님의 질서에서 이탈한 양이다.

바다에 버린 핵폐기물 하나님의 창조질서 교란
올림픽을 열 가치도, 일본 유토피아가 아니다

핵 쓰레기로 물 오염시키는 나라는 후진국

“내가 내 양 떼를 찾아보고 살펴볼 것이다/목자가 그의 흩어진 양들 가운데 있을 때 그날에 그가 그의 양 떼를 찾아 나서듯이 내가 내 양을 찾아 나설 것이다/ 구름이 끼고 어두운 날에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간 모든 곳에서 내가 그들을 구해 낼 것이다/내가 그들을 여러 민족으로부터 데려오고 그들을 여러 나라에서 모아들여서 그들의 땅에 데려올 것이다. 이스라엘의 산에서, 골짜기에서, 그 땅의 모든 주거지에서 내가 그들을 먹일 것이다./좋은 목초지에서 내가 그들을 먹일 것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은 그들의 우리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좋은 우리에 드러누우며 이스라엘 산지의 풍성한 초지에서 먹게 될 것이다/내가 친히 내 양 떼를 먹이고 그들을 눕힐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이다/나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 추방된 사람을 데려오며 상처 입은 사람을 싸매 주고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살찐 사람과 강한 사람은 내가 멸망시키고 정의로 그들을 먹일 것이다”(에스겔 34장 11-16절)

오늘날 일본은 자국의 이익과 배를 채우기 위해 잔꾀를 부린다. 한마디로 간악한 나라이다. 방사선 핵폐기물을 바다로 흘러 보내 이웃 국가의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겠다고 협박한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것은 자국의 어민은 물론, 대한민국의 어민, 이웃국가의 어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하나님은 힘없는 양(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하시겠다고 성서를 통해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탐욕에 길들여져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도성 밖, 영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가겠다고 고백한 그리스도인은 영문 밖으로 나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해야 한다. 주님처럼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할 수 없다.

역사를 왜곡하며, 과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반성 없이는 지도자, 목자가 될 수 없다. 성문 밖에서 고난당하는 이웃,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우, 일일노동자, 외국인노동자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다. 이들을 외면하고서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렇게 하나님나라는 준엄한 것이다.

일본은 분명 방사선 쓰레기를 바다에 버려 생명의 물을 오염시키는 삐뚤어진 나쁜 나라, 이리의 DNA를 물려받은 잘못된 양이다. 길을 잃고 잘못된 길로 가는 국가의 지도자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바로 목자의 길이다고 성서는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헌데 세계 최대강대국인 미국의 모습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일본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에 공동대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목자(지도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맨다. 잃은 양을 찾으면, 양을 어께에 메고 돌아와 이웃을 불러, 기쁨의 잔치, 생명의 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참사랑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목자라고 했다.

신종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처하는 일본정부의 모습은 일본이 후진국이라는 것을 반증하고도 남는다. 백신제조와 치료제 개발에서도 밀려나 있다. 백신생산 거점도 일본으로 끌어드리지 못했다. 그만큼 일본은 백신 후진국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야비성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다. 이웃나라가 잘되는 것을 절대로 보지 못한다. 일본 전 총리 아베는 이웃나라 한국에 대해서 경제 보복을 단행하면서,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와 7차례 만났다. 일본과 한국을 중재해야 할 미국은 일방적이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트럼프는 일본 아베의 간교한 이간질에 넘어갔다. 트럼프는 미국을 침략한 일본 편을 들며, 곤궁한 가운데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것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서 일본과 한국을 똑같이 우방이라고 말한다. 이웃국가 백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본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웃국가가 아니다. 한국에 기술을 이전해줘 잘살게 해 주었다고 생떼를 부린다. 일본은 우리의 우방이 될 수 없다.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 국가이며,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이다. 일본은 이를 망각하고, 이리의 가죽을 뒤집어 쓴 잘못된 양이다. 일본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일본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다. 누가 일본과 미국, 유럽을 유토피아라고 말했는가. 대한민국은 일본을 용서 할 수는 있어도, 잊을 없는 침략 국가이다. 일제 36년의 식민지 통치 아래서 이 땅의 국민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 맨주먹으로 항거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맨주먹으로 독립운동과 민족운동, 항일투쟁을 벌였다. 비폭력평화운동을 벌인 것이다. 잔인한 일본의 경찰과 헌병의 무자비한 폭력에 죽임을 당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의 국민을 내 마음에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일본은 오늘도 침략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도, 지금도 대한민국의 우방이 아니다. 일부 정치인과 종교인, 학자들이 일본을 우방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자이다. 그러나 미국은 6.25 한국전쟁에 참여한 피로 맺어진 혈맹이다. 일본은 6.25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원시국가에 불과한 나라이다. 대한민국에 고마워해야 할 나라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회귀하기 위해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오늘 후진국으로 회귀하고 있는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절대 원하지 않는다. 일본 아베의 경제보복으로 국민 모두가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대한민국 중심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아베에게 사죄한 인사가 한 교회의 권사였다는 것은 의아하다. 그가 오늘 대한민국의 애국자로 둔갑했다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분노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물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일본 우익들은 이 물을 마시며, 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하면 바다에 버려 이웃나라에 피해 줄 이유가 없다.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의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결정한 이후, 주변 국가의 국민들이 분노하며,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국민도 분노하며, 연일 일본정부를 향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독 한국교회만 조용하다. 권사가 일본 경제보복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서, 아베에게 사죄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을 버리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일본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을 바다에 흘려 내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교회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동성애 반대 운동 등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시키고, 이웃나라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을 바다로 흘려보내겠다는 일본을 향해 왜 침묵하는가(?)에 대해 국민들은 묻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침묵하는 일부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1달란트를 받은 종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행동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종이다.

정의와 양심, 책임감이 실종된 나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쓰레기를 버렸을 때,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균열이 생긴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것은 신에 대한 도전이다. 인간사회의 혼란과 고통은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신종바이러스감염증 보다도, 더 큰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았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들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 재앙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비교도 안 될 재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일본이 경험한 원폭과 체르노빌 원전사고 보다도 더 큰 재앙이 인류에게 불어 닥칠 것은 뻔하다. 어느 목사가 3.1절 집회에서 말했듯이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2방을 맞고 연합군에 항복했다. 이웃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일본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대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일본 어민과 이웃국가 대한민국 어민들의 항의는 거세지고 있다. 이제 바다의 생선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했다.

그래서 <니혼게이자신문> 다이키쇼키 칼럼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을 후진국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쫓는 이노베이션(혁신)에만 치중,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본원적 인벤션에는 소홀이 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린 일본은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을 열 가치도 없는 나라이다. 우리정부도 일본 동경올림픽 참가를 고려해야 할 시점에 왔다. 일본과의 국교단절을 이야기 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일부국민은 올림픽 불참을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후진국으로 빠르게 가고 있는 일본을 누가 “보건적으로 깨끗한 나라”라고 했는가.

그들이 바로 망해가는 이씨 조선 말, 한국에 들어온 영미선교사들이었다는 사실. 이들 선교사는 “일본은 보건적으로 깨끗하고, 조선인은 일본을 배우고, 일본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 유익하다”(아서 브라운 목사저 <극동의 지배>고 했다. 반면 조선인에 대해서는 “개같이 사납고, 돼지처럼 더럽다”고 평가했다. 그로부터 130년이 지난 오늘, 일본은 핵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후진국이 됐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 해 주었던 감리교 감독 웰치 등은 일본정부로부터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또한 많은 선교사들이 총독부의 인솔아래 일본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이들의 공을 내세워 비판 없이 무조건 받아드려, 속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해 왔고, 양산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대부분의 한국선교사들은 일본 식민지 통치 아래서 신음하는 피압박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몰각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과 행동은 탐욕 그 자체였다. 자국의 이익에 몰두하며, 한민족에게 지배자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 신민지 신학을 이 땅에 그대로 이식시켰다.

인간의 탐욕에 의한 변종바이러스가 속출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 역겨워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마스크를 쓰게 했다. 앞으로 입마개를 하고 죄를 짓지 말고 살라는 것이다. 또 손으로 범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손을 씻게 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면 다투고, 분열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살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