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이순신의 노획품, 일본 금부채는 어디로?”라는 제하의 글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으로부터 노획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금부채가 일본인에 의해 1909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간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노획한 “황금부채”는 1592년 4월 13일, 일본군이 부산포를 공격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5월 4일부터 8일까지 제1차 출전을 해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일본군을 패퇴시켰다. 5월 29일 시작한 2차 출전의 첫 날에는 거북선을 앞세워 사천 항에 정박한 일본전선 13척을 격침시켰다. 당포(6월 2일), 당항포(6월 5일), 율포(6월 7일)에서 모두 67척의 일본 전선을 격파·괴멸시켰다. ‘히데요시’의 야망이 물거품이 될 것을 예고하는 전투들이었다.

“황금부채”는 ‘히데요시’가 ‘가메이 코레노리(龜井玆矩)‘’를 류큐 영주로 임명한다고 써 준 임명장이며 증표였다. ‘코레노리’는 그 “황금부채”를 지니고 다니다가 10년 후인 1592년 당포에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쫓겨 도망치면서 놓고 갔던 것이다. 류큐 영주를 꿈꾼 ‘코레노리’에게는 평생의 치욕이었고, ‘히데요시’에게는 ‘이순신 장군’에 의해 대륙 정복의 꿈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견하는 상징물이었다. 현재 일본에는 일본 황실이 보관하고 있을 ‘이순신 장군’이 노획한 “황금부채” 외에 ‘히데요시’의 “다른 황금부채” 한 개가 전해진다. 이른바 “삼국지도부채”다. 임진왜란 직전에 침략을 준비하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한쪽 면에는 침략의 목적이 그대로 보여지 듯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다. ’이순신 장군‘이 기록한 부채와는 완전히 다른 부채이다. [출처: 주간경향1020호 : 박종평(이순신 연구가·역사비평가)

그러나 당시 조선은 ‘이순신 장군’의 애국 애족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권력 쟁취를 위한 지속되는 당파 싸움에만 취해 있을 때, 결국 ‘히데요시’의 야욕대로 왜구의 군화 발에 짓밟혔고, 이후 ‘황금부채“는 다시 왜구의 손에 들어 간 것이라니,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에 패망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도부채”가 일본의 왕실에 버젓이 존재 할 진대, 독도를 빌미로 한반도는 물론 대륙 정복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완전 독립이라 할 수 없는 남북 분단의 아픔 속에 정전 상태에 있으면서도 반쪽짜리 섬과 같은 땅 안에서 조선 시대와 같은 당파싸움으로 바람 잘 날이 없으니, 아! 국민들은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또다시 일제가 군화 발로 짓밟으려 할 때에 매국노들은 향연을 벌일 것이 뻔한데, 무지한 국민들은 또다시 왜구의 종살이에, 정신대에, 징용에, 생체실험에, 온갖 학살 등에 죽어가야만 한단 말인가?

우리의 제68주년을 맞이하는 8.15가 광복 한 것인가? 해방 된 것인가? 그 기쁨도 잠시 그 어떤 이들에 의해 갈라진 한반도 진정한 광복은 언제나 오려나? 아 슬프다 ’한일청구권”때 산정 된 것도, 무역역조로 인하여 다시 다 빼앗아간 일제? 따라서 만에 하나 왜구가 다시 침략해오면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으니, 미국이 우리 편이 되어 일본과 싸워 주면 안 될까? 그것은 북한과의 문제에만 국한 된 것인가? 따라서 너무 염치없는 소리일까? 왜구가 조선을 침탈할 때와 같이, 1982년에도 독도 문제를 두고 미국에서는 당사국 끼리 알아서 해결 하라 했다는데, 왠지 좀 불안하다. 우리가 왜구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니,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 대통령과 위정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이 나라 이민족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 옵소서!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렘6:17)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