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예수님 당시 성전의 실상을 보여주는 삽화가 있다.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에 끌고 나온 이야기다. 요한은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들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 8:2-5).

이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장소는 성전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자리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와야 할 자들이, 누군가를 옭아매고 죽이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들에게 성전은 이미 성전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야말로 성전을 수호하는 전위대쯤으로 여기는 자들이다. 인간의 위선이 이보다 더 뻔뻔할 수 없다. 정말 성전의 거룩함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라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리운 성전이기를 바란다면,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을 먼저 씻고 나와야 할 것이다.

종교가 타락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종교의 가르침은 모양도 닮지 않으면서, 그 종교의 기득권에 충성하는 자들만 득세한다. 교회 역시 타락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는 데는 관심 없고, 교회라는 조직에 충성하는 자들만 득세한다. 그들은 ‘거룩한 교회’, ‘주님의 몸된 교회’, ‘피값으로 산 교회’를 입에 올리며 못된 짓을 가리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수작들이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연약한 자를 보살피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다면 그런 교회는 반석 위에 세운 교회요 아름다운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교회라는 조직에만 충성하는 데 열심이라면 그런 열심은 교회를 병들게 하는 열심이다. 요즘 일만 열면 ‘국가’를 입에 담는 자들의 행태도 오십보백보 아니겠는가.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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