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예보

비 온다니 꽃 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 한 말이었다

▲ 문 현 미 시인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시에 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다.”(T. S. 엘리엇)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시인이 바라보는 시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냥 줍는 것이다/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버려진 채 빛나는/마음의 보석들//(나태주 「시」) 일상에서 존재하는 것들, 일어나는 것들, 버려진 것들 속에 시가 있다. 그래서 일상에서 주워 올린 말들은 생기가 있고 따뜻하며 말랑말랑하다. 여기 자신의 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소소한 일을 담담하게 표현한 시가 있다.

박시인이 아버지와 살면서 겪은 일을 거의 그대로 시에 옮겨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가 온다니 꽃 지겠다”는 아버지께서 실제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시인의 아버지는 덤프트럭 운전사이셨지만 시와 음악을 좋아하셨다. 10대 시절 청계천에서 노동자로 일하셨을 당시 <현대문학>잡지를 끼고 다니셨을 만큼 시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박시인은 인터뷰 때 자신의 시적 미감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고 고백했다.

아버지와 겪은 일상이 한 편의 시로 탄생하였다. 1연이 아버지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었는데 2연도 아버지의 일상을 아주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이 시에서는 어떤 문학적 기교를 찾아 볼 수 없고 특별한 구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을까. 바로 형식적 측면에서 행갈이와 연 구분을 잘 하였고, 내용적 측면에서 진솔한 마음을 담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평범한 사람의 일상 속 이야기인데 ‘생활과 예보’라는 제목을 결합시킴으로써 잔잔한 울림이 있는 것이다. 독백처럼 내뱉은 아버지의 말씀으로 표현된 1연은 꽃에 대한 섬세한 애정이 배어나온다. 아버지를 통해 꽃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 꽃을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적 대상에 대한 거리 개념은 문학에서 미학의 문제와 직결된다. 시인은 대개 대상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염두에 두고 시를 창작한다. 대상으로부터 멀어지면 냉담한 태도를 지니게 되고 가까우면 감정이 노출되어 긴장미가 줄어 든다. 이 시는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상당히 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친밀감이 더 느껴진다. 시인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가 닿아 있는 몰입감으로 인해 독자의 시선과 감정도 그리로 집중하게 된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낯설게까지 느껴지는 시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파동으로 인해 공감하게 되는 시적 묘미가 있다.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면서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느낌으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 섬세한 마음의 무늬를 감지하게 된다.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구순이 가까운 나이에 그림 그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처럼 그림 그리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늙었다”고 한 말이 박준 시인을 떠 오르게 한다.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시인에게서 나온 시가 은은하게 빛나는 여운을 남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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