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영적인 독약이다. 

▲ 김근열 목사
성경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교만하기 때문에 쫓겨난 뱀은 하와를 유혹할 때, 교만이라는 독약을 넣어 속삭였다. 악마가 준 교만은 패망하지만, 예수님이 주신 겸손은 인간을 존귀하도록 만든다. 예수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를 낮추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겸손이다. 

가난하게 사셨던 일생도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죽으신 것도 예수님의 겸손이다. 예수의 승천과 부활의 영광도, 다 그의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은 그를 높이셨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저의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3-5)”,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예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 11:29)”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18:4)”,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14:11)”

겸손은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영광을 재어보고 달아보는 유일한 표준이 된다. 즉 겸손한 자라야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을 하나님 나라에 유일한 사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먼저 하나님한테 그리고 사람 앞에도 참된 겸손이 가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겸손이 빠진 예배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장자교단부터 흔들림이 심각하다.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신앙의 지주가 되었던 그런 시대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건만...그리고 앞장서서 자신을 희생시키며, 수고한 원로들과 눈물 흘린 지도자들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토록 무질서하게 총회가 움직인다면 질서의 하나님이 어디 기뻐하시겠는가? 총회의 장소까지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고, 한 건물에 있는 총회 신문사 기자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등의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서로 비방하는 하며, 마치 링위에서 선수들이 난타전을 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 

이 뿐만이 아니다. 대형교회의 세습문제는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은지 오래다. 기독교대한감리교가 세습방지법 결의했다. 교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신선한 기대감은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결의가 잉크도 마르기 전에 대형교회에서 또 아들에게 담임목사의 자리를 물려주는 세습이 이루어졌다. 이제 중대형교회의 세습은 전국으로 유행처럼 반져 나가고 있다.

농어촌교회와 작은교회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이어 세습을 하라고 해도 거부하는데, 중대형교회에서는 왜 이와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칭찬하길까(?) 좋아하지는 않으실 것 같다. 이제 한국교회의 모든 총회는 법으로 담임목사 세습을 막아야 할 때에 이르렀다. 교회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의 가장 골칫거리로 제기되고 있는 신천지를 비롯한 각종 이단·사이비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주어야 한다. 이단·사이비의 문제는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교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과감한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이 시대에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 같다. 지도자는 예레미야처럼 예수님처럼 눈물이 마르면 안 된다. 한국교회의 모든 지도자와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의 자리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가까워 졌으면 좋겠다. 주님의 얼굴과 성도들의 눈높이를 볼줄 아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군남반석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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