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신 박사
영국의사협회지에 의사가 진료실에서 느낀 점을 고백한 글 중에 요즘 문득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계속하는 환자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환자를 판단하지 말고 도와야하는 입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환자 본인이 계속 술을 마시는 행동에 대해서는 답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의 답답함을 토로한 이 글은 의사가 진료실에서 하는 일만으로는 질병이라는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호소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병이 생긴 것에 대한 환자의 개인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나오고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의 대부분의 만성질환에 식사, 운동, 음주, 흡연 등 생활습관이 기여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생활습관을 바로잡아서 예방하라는 압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사실 측면에서’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가, 그리고 ‘가치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급성질환이나 전염병, 사고 등을 제외하고 현대는 만성질환을 안고 살고 의료계는 이를 관리하는 시대입니다. 만성질환의 위험도 다른 사회적 위험과 같이 정부당국이 관리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전적 원인과 사회경제적 원인 등이 작용하는 다인성 질환들인데, 위험요인으로 자신의 행동 즉 생활습관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흡연과 음주와 고지질식이, 운동부족, 스트레스 회피, 수면시간 확보 등이 강조됩니다. 개인과 집단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에 머물지 않고 보건의료정책에서 질병의 개인책임론이 강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주의적으로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첫째, 개인의 행동과 생활양식 자체가 물리적, 지리적, 문화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 개인의 행동만으로 질병이 결정되기보다는 확률적인 것이고 예방 등에 시간을 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작용합니다. 따라서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경우라도 실제 결과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고 부분적으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확률적인 사건입니다. 일정하지 않습니다. 셋째, 상황이 생긴 이유를 불문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여력이 있다면 돕는 것이 인도주의적 가치입니다. 넷째, 생활습관이 관여하는 질병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의료보험에서 하지 못하도록 배제하는 것은 사회적인 정치적인 권리 행사를 저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지만 그로 인한 책임을 오롯이 다 개인에게 돌리는 자유지상주의의 가치가 과연 의료에 합당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행동을 모조리 다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은 행여 사회적으로는 지나친 도덕주의, 또 더 나아가 국가적으로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될 것입니다. 만일 세금이나 본인부담금에 대한 논의가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것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미국의 민간의료보험에서 흡연여부나 체질량지수를 가지고 보험료를 차등하는 경우는 기업의 행위로, 독일에서처럼 예방프로그램에 참여를 한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은 사회적 합의로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이 여태까지 생활습관에 대한 개인책임을 의료의 급여우선순위 등에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꼭 영국을 따라하자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선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서 부당하고, 병상에서 책임을 묻는 것은 적어도 사회연대라는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을 둘러싼 사회환경에 정책적 개입을 하는 것이 전체의 건강결과에 좋다는 역학적 근거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틀을 갖추고 있지만, 재정의 어려움이나 수가의 왜곡 등으로 의료계 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회적 요인은 재정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의료에 직결되지 않는 재정의 낭비요소를 최소화하고, 필요에 근거한 보다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우선하여 급여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에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미세한 유전학적 원인이나 생활습관에 의한 개인책임 쪽보다는 우리의 주거와 직장 등 삶의 공간과 주변의 환경, 그리고 심리적 문화적 환경 쪽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명신 박사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보건학 박사. 윤리학 전공으로 철학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윤리학, 의료윤리 관련 강의를 해오고 있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교육실 소속으로 인문사회치의학 교육과정담당으로 일하던 중, 올해 9월부터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조교수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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