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네델란드 개혁교회는 1881년에 네델란드 개혁선교회를 설립하면서 예배와 성만찬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를 제도화했다. 원래 이것은 1857년 몇 몇 백인 개혁파 기독교인들의 약점 때문에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일시적 해결책이었던 것인데, 이제 그것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고난당하는 흑인들의 목소리인 ‘알렌 보사크’가 남아프리카에 있어서 진정한 인간성을 획득하려는 흑인민중의 투쟁을 앙양시켰는지 하는 질문을 갖게 한다.

백인 아프리카 개혁교회에 의해 남아프리카 흑인들에게 전수된 개혁교회 전통과 ‘칼빈’의 저작들에서 자신이 발견한 가르침 사이에 중대한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을 그는 지적하였고, 이들 차이점들은 개신교 시민과 치안판사 사이의 관계, 모든 개신교인들 사이의 상호 인격적 관계를, ‘현재의 삶과 그것을 구조할 수단들’의 사용 등의 영역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났다.

백인 아프리카 개혁교회들은 남아프리카의 흑인과 백인 사이의 관계라는 맥락 속에서 발전했던 소위 변형되고 왜곡된 전통을 전수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백인 아프리카 개혁교회들에게 사회의 ‘분리 발전’ 모델을 위한 개신교적 근거를 제공하고 조장하고 강화 했다. ‘알렌 보사크’는 오늘날 진정한 인간성을 위한 그들의 투쟁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불복종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들의 개신교적 선례들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흑인 개혁파 교회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 투쟁은 결코 어느 한 개인의 투쟁일 수 없으며, 오히려 16C 종교개혁에 참여했던 종교개혁 자들과의 연속성과 위대성을 추구하면서 신실한 복종과 봉사로 주께 응답하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남아프리카의 모든 남녀노소의 투쟁이다. 흑인신학자들은 ‘인종차별 정책은 죄이며,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도덕적, 신학적 합리화는 복음으로 부터의 이탈이며,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배신이며, 이단이다’라고 선언한다.

진정 ‘알렌 보사크’는 인종차별에 대한 분리정책을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단으로써 천명하는 20C 말의 예언자적 소리를 대변한다. 그는 많은 예언자들이 받았던 박해와 죽음을 내다보았다. 남아프리카의 상황에서 해방신학에 종사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고 위험스런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흑인신학의 도전과 메시지는 흑인 민중들의 자유에의 열망을 일깨우며, 자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의미를 깨달은 공동체 내에서 영혼의 합창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그 합창의 한 복판에서 ‘알렌 보사크’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니”(롬1:6)라는 외침과 고백을 들을 수 있다.(참고:신동아 1987년 1월호 별책부록)

물론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인권은 물론 인종차별 등에 대한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형식과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감을 지울 수가 없어 위선으로 보일 때도 많았다. 따라서 구원의 복음을 외친다 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구원의 외침인지, 저 사람들이 부르짖는 개혁주의 또는 보수주의는 생명존중인지, 학살동조인지, 인권말살동조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도 침묵으로 일관 했으며, 나아가 학살자의 정당성에 찬사를 보내며 이것이 애국이요 교회가 지향해야 할 바라고까지 조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외침 등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고, 우리 개신교인들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따라서 다시는 과거와 같이 부끄러운 한국교회사를 써가지 않도록 참회의 마음으로 구원의 열정에 불타올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옛 향수에 젖어 있는 일부 교계 인사들에게서 개혁신학, 보수신학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누가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배신자이며, 이단자’인지 ‘알렌 보사크’의 해방신학과 설교와 삶에 질문하여 보게 된다.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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