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자 목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첫째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그 다음은 성령의 지시를 받음으로 알고, 마지막은 기도를 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하도록 밤을 지세며 기도하셨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향한 절규의 기도였다.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기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줄 곡해 할 때 실패한다. 인간은 연약하다.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뜻이 아닌 것을 뜻으로 잘못 알고 기도를 했다가 낭패를 본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기에 진리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편법으로 자기를 정당화 하는 것에 대해서 용납하지를 않는다. 하나님의 올바른 뜻이 무엇인지 쉬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한다.

신앙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밟아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화의 과정이다. 왜 성도를 성도라고 부르는가(?) 거룩한 무리라는 뜻에서 부르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 신앙공동체에 대해 성도라고 부르지 않고, 교인이라는 부르는 이유는, 그 만큼 교인들이 성숙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성도는 거룩해야 한다. 약하면 안된다. 바울도 데사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거룩을 강조했다.

“하니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는 거룩함이라}(살전 4:3)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하기오스’라고 한다. 이 말은 잘라낸다는 말이다. 우리안에 자리하고 있는 더러운 것들을 잘라낸다는 말이다. 세속적인 것, 물질적인 것, 이기주의적인 모든 것을 단절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라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다.

“거룩함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이 무엇을 먹느냐, 어떻게 사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네”
제자는 스승의 대답에 다시 물었다.
“그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든가, 때와 장소를 잘 가려 섹스를 한다는 그런 구별된 행위가 거룩한 행동입니까”
랍비는 제자를 돌아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간의 폭은 넓어서 동물들로부터 천사에 이르기까지 그 수준이 아주 다양하지. 천사에 가까운 사람을 우리는 거륵함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사람끼도 사람이 보지 않는데서는 동물처럼 먹거나 성적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인간은 동물일 수도, 천사 일 수도 있다. 이 때 자기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이 거룩한 자이다”

교회가 거룩하고, 성도가 거룩하다는 것은 교회와 사람이 거룩하다는 말이 아니다. 교회와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룩한 서도는 거룩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고 사도바울은 말했다.

햇빛중앙교회 담임·충주국제금식기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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