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7:21-23

▲ 정병윤 목사
역사적 기독교는 예수님 부활승천 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탄생되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사도들과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했던 일곱 집사들로 하여금 실현되었다. 하지만 역사 이래 기독교는 항상 사단의 도전을 받아왔다.

아담타락 이후 구원을 계획하셨던 성부 하나님과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구원을 완성하셨던 성자 하나님과 구원을 적용하셨던 성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믿어 구원 얻는 일에 오늘도 일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아담을 넘어지게 하고 불순종으로 에덴을 잃어버리게 했던 사단은 끊임없이 방법과 수단을 달리할 뿐 유일한 기독교의 구원을 훼방하고 파괴시키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비록 이름과 색깔과 모양을 달리할 뿐 많은 사람을 구원에서 이탈하거나 멀어지게 하는 일에는 더욱더 기세를 부리고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부단히 음부의 권세와 싸워왔다. 음부의 권세는 교회 밖에서 들어오는 무신론적 사상도 말하지만 그보다도 더욱더 경계해야 할 것은 교회내부에서 일어나는 거짓된 신앙 사상이다. 어느시대나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를 허는 이단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교회 내부에서 일어났다.

이를테면 기독교의 원수는 집안에 있었던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는 도케티주의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어스” 이단은 오늘날 세계교회의 거짓선지자 적 그리스도의 뿌리로서 작금의 흔들리는 한국교회의 거짓된 복음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초대교회는 말씀위에 든든히 서서 집에서 든지, 성전에서 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사명이라고 해서 초대교회와 다를수는 없지만 전도의 사명에 주안점을 두었던 한국교회는 선교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적인 부흥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 교회를 말씀 신앙으로 든든히 지키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러한 보수에서 등한시한 허점과 틈세를 이용한 사단은 양적성장을 타고 신학적 이단과 신앙적 신비주의가 양가죽을 덮어쓰고 급기야 이리의 속내를 들어내는데 이르렀다. 전도의 사명은 잘했으나 보수의 사명에서 드러난 허점은 급기야 이단으로 활동하는 좋은 무대를 내어준 꼴이 되었다.

기복적 신비주의, 물량주의, 세속주의, 인기주의가 거치른 춤을 추고 있다. 주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인기를 얻고 명예와 부를 얻었다고 성공한 지도자라고 큰소리 칠지 몰라도 그날 그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면 뭐라고 변명할 것이가? 그때는 이미 시간이 없다.

지금 한국교회는 죽 써서 개주는 실수를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진리를 옳게 분별하며 전도의 사명 못지 않게 바른 신학으로 바른신앙의 사람을 “보수”하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참으로 두려울 일이다. 영광은 잠깐이요 구원은 영원하다. 바울같은 사도도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렵다고 하지 않았는가(고전9:27)”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주님 앞에 어떤 사람으로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깊이 통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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