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필자는 강효숙 교수의 “9월 1일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란 보도(출처: 국민일보)가 가슴에 백여 왔다. 그간 우리 정부는 한·일 관계에 관한한 항상 통고내지는 애걸할 뿐, 우리가 당한 불행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증거가 없다하면 속수무책이었다. 우리가 당한 우리의 아픈 역사인데도 조사된 자료의 미비함으로, 일본의 사료에만 의존하여왔고, ‘이미 다 보상’ 운운하면 할 말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과서 까지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작금에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 중 거의 반 이상이 별세 하셨으나 우리 정부는 아직도 공허한 항의의 소리만 내고 있을 뿐 별로 이러다할 대책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일제는 조금의 뉘우침도 없이  교과서 까지 왜곡하지 않는가? 교과서 왜곡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편의대로 자신들의 입맛대로 기록하여 가르치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란 말인가?

 ‘관동대학살’ 아니 “조선인대학살 90주년”을 생각하면 울분이 일지만 우리로써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도쿄 등 일본 관동(關東)지방을 강타했다. 이 때 일본 정부는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혼란이 심해져가자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는, 일본 군대와 경찰, 민간인들로 구성된 자경단(自警團)은 지진 다음 날인 2일부터 4일까지 도쿄, 요코하마, 지바, 가나가와 등 관동 일원에 거주하던 수만 명의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것이다. 비단 학살이 이 때 뿐이겠는가? 수많은 젊은 조선 청소년들이 징용에 끌려가 일제가 벌려놓은 전쟁터에서 죽어 갔고, 전쟁물자 생산, 탄광 등에 동원된 자들 곧 일제의 필요에 의해 끌려간 이들이 아니었던가?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남녀노소 부모자식을 심지어 임신부까지도 무차별 학살했던 것이다.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는 저서 《압박과 학살》에서 2534명으로, 김승학(金承學)은《한국독립운동사》에서 6066명, 또한 당시 피해 학살자 수는 6661명 등으로 알려지지만 최근 발견된 1924년 3월 독일 외무성의 사료에 의하면 이보다 약 3배 이상 많은 2만3059명으로 밝혀졌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제 36년 동안 학살당한 조선인에 대한 수를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에서 관동대학살(조선인대학살) 90주년이 된 것이다. 

 “배부른 임신부까지도 일본도로, 죽창으로 무참히 학살 했던 그들” 아! 대한민국이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권력욕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정쟁을 보면서, 조선(대한민국)이 일제의 먹이가 된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인들에게서 조차 인애와 공평과 정직과 진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데 비애를 느끼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일제의 가공할 무기들이 당신 아니 우리의 목숨을 우리의 임신한 딸들 까지도 노리고 있음을 잊지 말라! 일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재무장을 위해 내년 미군 무기를 구입하는데 방위예산을 22년 만에 최대로 증액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재무장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대한민국을 지켜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가? 깨어나라 대한민국 백성들이여! 깨어있자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리고 9월 1일을 잊지 말자.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4).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