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성 교수
2. 교회의 정체성과 에큐메니즘 운동

교회의 영적인 일치를 참된 마음으로 추구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2장1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참된 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고 하였다. 건전한 복음적인 교회들끼리 상호인정하고 서로 친교를 나누어야만 한다. 기독교 개신교 교단 상호간에 서로에 대한 선의와 존중과 사랑이 표현되어야 한다.

특히 협의회적인 일치에서는 교리나 본질적인 손상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합하여야 한다. 문제는 조직이나 단체에서 진리를 놓고 설득하고, 사랑의 정신으로 바로잡아주되, 지나치게 급한 외형적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삼가야한다. 분열과 분리에는 야심과 성격의 갈등이 항상 존재한다.

지금도 한국교회 내에서 교단간의 일치와 연합운동이 크게 혼란을 빚고 있다. 교회 단체라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권세자들처럼 행동하는 연합기관이 성행하는 한, 교회의 진정한 연합은 불가능하다.   

3. 거시적 교회론의 재설정

 13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초기 선교사들이 남기고간 신앙의 전통과 유산은 엄청난 축복이었고,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지금은 일부에서만 지키고 있을 뿐, 한국교회의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고 말았다. 상업주의적인 개교회주의에 빠져버린지 오래된 한국교회는 개인적인 기업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개척 목회자의 개인적인 헌신과 노력과 수고를 근간으로 해서 성도들을 모으고, 제자훈련과 기도집회 등을 통해서 복음을 체득하는데 힘써 왔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가 너무나 개인화, 혹은 사유화 되는 현상을 빚어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요,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공적인 기관이다.

서양교회가 지나치게 공공성을 강조하다가 무너져 내렸다면, 한국교회는 너무나 목회자 중심의 개별성과 개인적인 특성에 의존하다가 객관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반성해야할 점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의 긴밀성이다. 마태복음 16장 18-19절을 근거로 하여,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성경신학 교수였던 보스 박사가 일찍이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성을 강조하였다.

교회만을 고집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는 가장 중요한 성경적인 안목으로 교회의 역할과 위치를 연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보스 교수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으니, 교회가 반석위에 지어진 집이며, 열쇠를 받았으니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교회는 속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는 안목으로 교회를 세우고 지켜 나가야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 구현된다. 하나님의 나라의 도구가 교회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관리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증거를 책임진 기관이다. 다른 해석도 나왔다.

4. 교회의 정체성 회복: 복음 선포

 21세기 교회론은 복음선포라는 교회의 중심사역을 살려내는데 있다. 나는 교회사역의 중심은 복음전도와 선포에 있다고 확신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복음을 들려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4-15에서,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고 증거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는 가버나움 회당에 들러서 이사야 61:1-2을 읽으시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자 오셨음을 강조하였다. 물론 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지만, 사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이 복음이다. 누가복음 4장22절에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다. 마태복음 9장 35절에서도,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사역을 계속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복음이란 히브리어 “바사르”인데,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뜻이다(왕상 1:42, 삼하 4:10). 때로운 전쟁의 패배를 전달하는 것도 포함되며, 하나님의 심판을 전파하는 것도 복음이 되었다.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유앙겔리온”이 사용되었는데, 언제나 좋은 소식, 승리의 소식 의미하는 전문적인 용어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선포하는자이며, 동시에 복음을 구성하는 자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 속에 복음으로서 현존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있다. 예수님의 도래와 관련된 구원의 메시지가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담겨있는 것이 복음의 내용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포했다. 로마서 1장 3-4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아들에 관한 복음”이라고 했고, 디모데 후서 2장 8절에서는,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를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고 촉구하였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신다”(살후 1:8). 복음 전파의 범위와 대상은 모든 족속과 모든 열방이다. 지리적 제한이란 없다(마 28:19).

교회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하고 착하게 살아가도록 선도하는 기능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지역사회와 유대를 맺어야 하지만, 교회가 향우회나 동창회나 자선단체나 비영리 정부기관과 같은 역할을 주된 임무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교회의 정체성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다. 21세기 서구 교회의 몰락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사역들과 신학의 이탈에서 초래되었다. 서구 사회의 세속화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문화적 변화와 정보화 시대의 인식전환,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가 빚은 종교경시 사상,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선포하거나, 세상 사람들의 모임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차원을 달리하여 위로부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내려주시는 신령한 만나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교회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복음의 선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로서 인간에게 주신 유일한 진리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말씀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하늘로부터 오신 “본체의 형상”이시고, “진리”이다(히 1:3).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훼손한다면 기독교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왜곡하는 다른 소리들을 듣지 말라고 하셨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 11:6)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다는 것이 복음이다(요 3:36, 5:24,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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