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이스라엘의 모든 가정은 물론 회당의 한 켠에 미크바, 곧 정결욕(ritual bath)을 위한 수조(水槽)를 마련한다. 사막의 에세네 공동체와 마사다의 산정에도 미크바를 두었다. 사전적 의미는 흘러든 물이다. 구약에 물에 관련된 표현은 다양하다. 바다, 강, 운하, 냇가, 샘물, 연못, 늪지, 웅덩이, 고인 물, 와디 등등처럼(출 7:19; 레 11:36; 신 8:7). 크게 흐르는 물, 고인 물, 그리고 샘물 등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 모든 형태의 물이 기본적으로 미크바이다. 

왜냐하면 모든 물은 생명의 원천이며 성장의 동력으로 어딘가에 흘러들기 때문이다. 여기는 물 전반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유대교의 정결례와 관련하여 <70인역>이 미크바를 ‘시나고그’로 옮긴 사실에 주목한다.   

<70인역>의 번역에 일관성은 없다. 예컨대 창세기 1장에서 한 곳으로 ‘모인 물’(미크바)은 그리스어 수스테마타이고(창 1:10) 출애굽기와 레위기는 수네스테코스와 수나고게로 각각 다르다(출 7:19; 레 11:36). 히브리어 미크바는 한 데 모인 물, 또는 빗물이 흘러서 고여 있는 상태다. <새번역>을 비롯한 한글역은 미크바를 ‘고인 물’로 옮겼으니 본래적인 의미를 살린 셈이다. <70인역>이 그 중 한 구절(레 11:36)에서 ‘시나고그’라고 번역한 것을 우연이랄 수 없다. 아마도 그들은 물의 흐름을 포착하고 여기저기서 흘러와 모인 상태의 미크바가 마치 유대인들의 회당(시나고그)과 흡사하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한편 <70인역>의 ‘시나고그’는 보통 ‘모임’이나 ‘회중’을 뜻하기도 하다. 번역자들은 이스라엘 백성, 또는 출애굽 공동체를 지칭하는 ‘카할’(לחק), ‘에다’(עדה) 등을 시나고그로 옮겼다. 차이를 들라면 카할은 ‘소집된’ 회중이고, 에다는 ‘몰려든’ 무리에 해당하며, 하그(גח)는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로, 미크바는 이심전심 ‘모여서 하나가 된 무리’(collected mass)로 구분할 수 있다.  

유대교의 회당은 히브리어로 ‘베트 테필라’(사 56:7; 막 11:17), 또는 곧 ‘베트 커네세트’나 실제로는 그리스어 ‘시나고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시나고그는 ‘순’과 ‘아게인’의 결합된 형태다. 

즉 추수 뒤 알곡이 ‘한 곳에 모이듯’(미 7:1; 시 33:) 사람들의 ‘모임’(ingatherings)으로, 나중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을 가리킨다(마 4:23; 막 1:23; 눅 4:20; 요 6:59; 행 17:17). 마치 물이 흘러서 낮은 곳이나 웅덩이에 고이듯 시나고그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자연스레 모여서 만들어진 공동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점에서 <70인역>의 미크바에 대한 통찰력은 주목할 만하다. 

이 대목에서 미크바의 다른 용례를 살펴보자. 솔로몬의 현자 이미지와 외교적 영향력으로 인해 수많은 상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다(왕상 10:15). 한데 솔로몬이 말과 병거를 ‘이집트와 미크베’에서 수입했다는 구절은 정교한 해석이 필요하다(왕상 10:28). 대부분 유세비우스를 따라 ‘이집트와 쿠에로부터’라고 옮겼다(LXX, Vulgate, 공동번역). <70인역>은 미크베에서 실리치아(Cilicia)를 가리키는 지명 ‘쿠에’로 옮겼으나 그것은 오독일 가능성이 높다. BDB 사전은 ‘전치사+지명(쿠에)’이 아니라 ‘무역상인들’로 풀이한다. 여기서 미크베는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각지의 상품을 들고 모여든  상인들의 무리로 봐야 옳다. 물이 한 곳에 모이듯 솔로몬 재위 때 많은 상인들과 물산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태초에는 오직 물 뿐이었다(창 1:2). 물은 생명의 원천(amniotic fluid)이다. 원초적인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영양분을 공급하고 기운을 차리게 한다. 물은 어딘가로 흘러든다. 회당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회집한다(막 1:23; 3:1; 행 6:9; 약 2:2). 그곳이 바로 미크바, 곧 시나고그다. 

모든 물은 미크바다. 물은 깨끗하게 씻어줄 뿐 아니라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70인역>은 회당의 본질적인 의미와 성격을 히브리어 미크바에서 정확하게 읽어낸 것이다. 마침내 미크바는 이스라엘의 ‘소망’이 된다(렘 14:8; 17:13; 50:7; 대상 29:15; 스 10:2). 경건한 신앙인 가정에 미크바를 둔 이유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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