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성막 건축을 위해 조사를 받은 603,550 명은 ‘성소의 세겔’로 각각 은 한 ‘베가’ 곧 ‘반 세겔’ 씩을 드렸다. 스무 살 이상의 이스라엘 남자는 모두 생명의 속전을 야웨께 바쳐야 한다. 부자라고 더 낼 수 없고, 가난하다고 적게 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위한 공평하고 정당한 요구다. 그렇다면 ‘한 세겔’이 아닌 ‘반 세겔’을 바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는 아무런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드려야 한다고 구약성서는 수차례 강조하지 않은가?(레 22:21; 시 51:19) 먼저 이스라엘의 화폐의 단위에 대하여 알아보자.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서 쓰이던 화폐 종류는 일곱 가지다. 달란트로 알려진 키카(3000세겔, 60 미나, 35kg. 출 25:39; 38:27), 미나(50 세겔, 왕상 10:17; 느 7:71), 세겔(20 게라, 12g, 창 23:15; 출 30:13), 베가(반 세겔, 창 24:22; 출 38:26), 게라(출 30:13; 레 27:25; 겔 45:12), 빔(2/3 세겔, 삼상 13:21), 크시타(‘은’으로 번역. 창 33:19; 수 24:32; 욥 42:11).<Plaut, 636> 큰 단위부터 작아지는 순서로 나열했지만 중간의 ‘세겔’이 기준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세겔이 표준적인 단위라는 것은 1/2 세겔(출 30:13; 38:26), 1/3 세겔(느 10:32), 1/4 세겔(삼상 9:8) 등으로 활용된 사실로도 확인된다.

세겔은 히브리어 ‘לקשׁ,’ 아람어 ‘לקת’에 뿌리를 둔 단어로 ‘들다, 무겁다, 지불하다’ 등을 뜻한다. 다니엘 5장의 ‘데겔’은 세겔의 아람어다(단 5:27). 이렇듯 세겔은 고대 이스라엘의 기준 도량형이다. 특히 성전의 예물이나 왕궁의 세금을 낼 때 쓰였다(출 30:13; 38:24-26; 레 5:15; 27:3, 민 3:47; 삼하 14:26). 그러나 보통 시장이나 평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창 23:16; 대상 21:25; 렘 32:9; 슥 11:12).  그리하여 이따금 ‘성소의 세겔’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곧 성전에서 측정하는 방식은 일반 거래보다 엄격하게 적용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출 30:13; 민 7:13, 19 등).<Sarna, 196> 성소의 세겔은 하나님께 드린 예물이기 때문에 정직하게 바쳐야하고 그럼으로써 ‘신성한 세겔’(sacred shekel)이 된다.

에스겔이 하루 음식으로 20세겔을 섭취한 것으로 보아 반 세겔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겔 4:10). 성막 건축을 위한 ‘반 세겔’은 부담스럽지 않아 누구라도 바칠 수 있는 분량이다.<Carasik, 268> 따라서 이스라엘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현실적 장치로 본다. 또 다른 관점에서 반 세겔의 영성적 의미다. 유대교 전통에서 히브리어 ‘세겔’은 단지 성전에 바치는 예물의 단위가 아니다. 세겔의 숫자값(gematria)은 ‘영혼’을 뜻하는 네페쉬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반 세겔’이란 영혼의 절반이란 뜻으로, 곧 ‘상한 영혼’이며 하나님 앞의 ‘겸허한 마음’이다. 

경동교회 건물의 바깥벽은 고르지 않고 투박하다. 건축가는 붉은 색 벽돌을 반으로 쪼갠 후 거친 면을 밖을 향하게 쌓아올려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했다. 예배당을 통해 경건한 믿음을 구현하려는 건축가는 ‘반 세겔’ 곧 ‘상한 영혼’의 히브리 신앙을 ‘파벽돌’(broken brick)로 반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사 42:3),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며(시 34:18), 상한 심령을 치유하는 분(겔 34:16)이다.  

세겔은 구약에 100여 차례 언급되는 화폐의 기본 단위다. 특히 두로와 카르타고를 비롯하여 모압, 에돔, 페니키아 등지에서 활용되었으며 세겔은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유통되고 있다. 구약에서 세겔은 동전이라기보다 12 그램 정도의 은(silver)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동전은 기원전 7세기 이전에는 발굴되지 않는다. 성전에 생명의 속전으로 바쳤던 ‘반 세겔’은 누구라도 정성껏 드릴 수 있는 분량이다. 복음서의 ‘반 세겔’은 헬라어 두 드라크마(di,dracma)의 <개역개정> 번역이다(마 17:24). 반 세겔은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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