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헌철 목사
어려서부터 신동의 소리를 들은 프랑스의 블레즈 파스칼(프랑스어: Blaise Pascal /bl?z paskal/, 1623년 6월 19일 ? 1662년 8월 19일)은 심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 발명가 및 작가로 알려져 있기도 한 그는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란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20세 전에 과학연구 에 몰두한 나머지 정력이 너무 소모하여 건강을 해치게 됨에 의사의 권고로 파리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 하였고, 그로인한 생활이 극에 이르렀으나, 30세에 이르러서는 사교생활에 공허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처럼 그를 빠져들게 하였던 것을 어리석게 생각하고는 사교계를 멸시하는 생각과 사교 인들에 대한 실증을 갖게 되었다.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공허감을 매우기 위하여 다른 책을 일고 글을 쓰며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에 몰두하건만 그의 명성에는 만족을 주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어릴 때부터 신앙의 훈련을 받고 신앙의 세계에서 생활하였건만 그의 믿음은 과학연구와 사교생활에 눌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수녀인 누이동생 ‘찌크리누“ 찾아가게 되고 누이와 함께한 간절한 구원의 기도가 있었다. 1654년 11월 23일 밤은 그의 믿음을 깨우치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기록한 종이쪽지를 평생 몸에 지니고 살았다. 그 기록의 요점은 이랬다. “은총의 때 1654년 11월 24일 밤, 10시 30분에서 12시 30분 사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와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확신, 감격,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하나님 밖의 이세상과 모든 것을 잊어라, 하나님은 복음에 나타난 길에서만 볼 수 있다. 사람의 영혼의 위대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파스칼’은 ‘데칼트’의 감화를 받아 이성을 존중하고 이성으로써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믿음의 경험으로써 지금까지 생각하여 오던 그 증명의 부족을 깨달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의 계시하신 복음으로만 설명되고 믿음의 기초는 복음이며 그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 하였다.

이처럼 믿음의 세계로 생활이 전환된 후에는 “모든 쾌락과 모든 사치를 물리치라”는 것이 그의 생활 방식이었다. 말과 마차를 팔고, 장식품과 귀금속을 다 처분하고, 음식은 나무젓가락으로 먹고, 식기는 토기를 썼다. 책도 믿음에 관한 것 외에는 전부 남에게 나눠주었다. 사교시대와는 정반대로 극단으로 보일 정도의 금욕생활을 보냈다. 교회의 예배와 은밀한 골방의 기도는 그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틈만 있으면 ‘바울 로이얄 수도원’에 가서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었다. 그가 병들어 죽기임종이 시간이 가까웠을 때에도 가난한 사람에게 간호를 부탁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이 그 말에 응하지 않음으로 “그러면 나를 무료 병실에 옮겨 달라”고 요구 하기는 등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여 죽음도 같이 하려고 생각하였다. 그가 최후로 성찬을 받을 때에는 몸을 반쯤 일으키고 신앙고백을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성찬에 임하면서 “주님!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하고 눈을 감으니, 1662년, 39세 이었다.(참고 : 백과사전들)

 오늘날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찬양한다. 그러나 9월 7일(토)밤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장애인 시설 '실로암 연못의 집'을 운영하는 ‘거지목사의 두 얼굴’ 등의 문제들이 전파를 탈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도려내지만, 오늘도 천재 과학자 ‘파스칼’의 생애 중 그의 신앙고백과 삶 등을 이야기 할 뿐,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감겨져 있지 않은가?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8)./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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