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일반적으로 제자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스승을 스스로 찾아가서 그의 문하에 들어감으로서 제자가 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사람을 제자로 삼지 않고, 당신의 선교 현장에서 만난 사람을 불러내서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일과 고뇌에 동참해줄 친구와 같은 사람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다. 하지만 세리 레위를 제자로 삼으신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세리는 유대사회에서 매국노, 변절자, 반역자의 대명사인 자요, 강도, 살인자와 동류로 죄인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친구로 삼으셨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특별한 재능을 보고 부르신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방식,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대로 세리 레위를 제자로 삼으신 것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스라엘은 세리 레위와 다를 바 없는 종족이었다. 당신의 첫사랑을 배반하고 바알과 짝 짓기를 거듭한 자들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학자 류승국 선생에 의하면, 우리말 ‘ㄱ’은 하늘을 표상하고, ‘ㄴ’은 땅을 표상하는데, 이 ‘ㄱ’과, ‘ㄴ’이 합해서 생명의 소리 ‘ㅁ’(M)이 된다고 했다. 생명은 하늘과 땅이 서로 응함에서 비롯된다는 풀이다. 호세아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인 야훼 하나님을 외면하고 땅의 잡신인 바알을 섬김으로서 결국 생명의 ‘음’ 소리를 내지 못하고, 마른 뼈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만 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거죽만 남은 이들을 불러내시어 새롭게 시작하자고 하신 것이다(호 3:1).

세리 레위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름에 즉각 응했다. 그만큼 생명을 갈망했던 사람이다. 레위는 그 일이 얼마나 기뻤던지 예수와 동료들을 자기 집에 초청해서 함께 먹고 마시며 활기 넘치는 생명의 축제를 벌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적개심을 지닌 이들이 있다. 저 옛날 바알과 짝짓기를 일삼은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는 바리새인들이다. 오늘날 바리새인들은 누구이겠는가? 하나님을 풍요의 신처럼 섬기는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 9:13b)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부르신다. 간음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당신의 친구로 맞이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다.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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