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1세기가 도래하면서, 다시금 선교가 모든 신학을 지배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성경신학이나 신약신학, 구약신학처럼, 실천신학에서 따로 완전히 독립하여 선교적인 모델로 새신학을 구성해야 한다는 외침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선교중심의 관점으로 재편되려면 완전히 새로운 신학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이론적인 신학과 실천적인 선교를 조화시키려는 매우 긍정적인 노력을 하는 시도가 선교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더 이상 선교신학의 한계를 두지 않으려 하는 것이며, 타지역에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중심신학으로 옮겨서 도전을 주려고 시도하였다. 조직신학을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비개혁주의 신학자들 모두로부터 제기되었다. 이런 선교중심적인 방법론적인 면에서 새로운 전제를 가지고 크게 영향을 미친 신학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메첸 박사와 하비 칸 교수이다.

1929년 프리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분리하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을 창설한 그레샴 메첸 박사는 미국 정통장로교회라는 새로운 교단의 산파역을 맡으면서 해외선교를 역설하였다. 탁월한 신약학자였던 그는 새로 형성된 교단 해외선교부 대표로 활약하였다. 프린스턴신학의 거장들을 존중하였던 메첸 박사는 아취발드 알렉산더, 챨스 핫지, 벤자민 워필드와 같이 선교와 부흥운동의 비전을 품은 정통 칼빈주의 신학을 그대로 지켜나가고자 했었다.   

또 한 사람은 1972년까지 약 10년간 사역하던 한국을 떠나서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으로 돌아간 하비 칸 교수였다. 그는 문화인류학, 선교학, 전도학 등을 체계화하는데 치중하였다. “신학의 선교적 임무”라는 글에서, 만일 교회가 선교를 중심에 놓고 사역하지 않는다면, 중대한 교정이 필요하며, 특히 조직신학의 관점이 철저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주로 개척선교와 신학교육을 책임 맡았던 하비 칸 선교사는 “복음비평사”와 “현대신학해설”등을 저술하여서 1960년대에 필요한 역할을 한국선교사로서 성실히 수행하였다. 선교는 신학의 핵심이기에 분리할 수 없기에, 다시 미국에 귀국하여서는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을 정리하여 해외에 소개하였다. 만일 교회가 선교하는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성도들이 생각해야할 복음의 핵심적인 사역은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7. 선교적인 관점에 관한 논쟁

서구 유럽의 교회가 침체와 쇠퇴의 길에 접어들면서, 교회론 전체에 대해서 재구성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선교와 전도를 하지 않았던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서구 유럽의 교회는 숫적으로나 영향력에서나 감소하였다. 왜 서구교회가 그렇게 위축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개혁신학자들 사이에 선교를 위한 조직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서 선교신학적인 관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을 가르치다가 루터신학대학원으로 옮긴 크레익 반 겔더 교수는 전통적인 조직신학이 내놓은 교리적 강조점들을 모두 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뒤집기를 해야 한다고 담대한 주장을 내놓았다. 반 겔더 교수는 딱딱한 조직신학이 핵심으로 다루는 두 가지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첫째는 개혁신학에서 가장 핵심으로 취급하는 언약과 선교와의 관계가 잘못 설정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언약신학은 선교적 모델로는 부적합하고, 새로운 신학적인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구원의 은총을 전파하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적용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사회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가운데서는 더 이상 전통적인 교회론으로는 효과적인 목회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성경적 교회론이 잘못되어서 오늘의 교회가 혼란에 빠져들었다는 것에 대한 입증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칼빈 신학대학원의 볼트 교수와 뮐러 교수가 이들 선교학적인 재구성주의자들의 입장을 요약하고 결코 전통적인 교회 론의 잘못이 아니라는 반론을 제기하였다. 선교가 목적이 되어서 조직신학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선교가 곧 교회의 유일무이한 존재목적이요, 최선의 임무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성경적인 기초라고 할 수 없다는 반론이다. 전통적인 교회 론에서 예배, 양육, 봉사, 구제, 성경공부, 교육 등을 핵심 가치로 추구하고 있는데 오로지 선교 적 목적에만 두어야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교회는 선교기관이다”라고만 극단적으로 단순화 시키는 것은 분명히 지나친 주장이라고 본다. 선교적인 재구성을 원하는 자들은 교회 론에 대해서 객관적이 점검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교회 론을 잘못 구성하였다고 비판한다.

또한 선교사들을 파송하는데 열심을 내지 않았고, 선교적인 임무를 강조하는 신학을 구성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이것은 전혀 사실에 맞지 않는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교회 론에서 강조했던 것은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 사이의 구별에 대한 것이었지만, 결코 전파하고 증거하는 일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개혁교회가 3대 교회의 표지들, 참된 복음의 선포, 권징의 정당한 시행, 말씀에 근거한 성례 등을 강조했지만, 오직 교구 내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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