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목사
탈해의 결혼
탈해에 대한 소문은 신라의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남해왕은 탈해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왕의 맏딸을 탈해에게 시집보내었다. 이리하여 탈해는 왕의 사위가 되었다. 하루는 탈해가 동악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몹시 갈증을 느꼈다. 탈해는 백의라고 하는 사람을 시켜서 마실 물을 떠오게 하였다. 백의는 뿔로된 잔을 들고 물을 뜨러 갔다. 백의는 잔에 가득 물을 떠오다가 목이 마른 것을 느끼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랬더니 뿔로 만든 잔은 백의의 입술에 딱 붙어버리고 떨어지지 않았다. 백의는 할 수 없이 입술에 잔을 붙인 채로 탈해 앞으로 갔다. 탈해는 이것을 보고 백의를 꾸짖었다.

“아놈, 떠오던 물을 함부로 마시었구나.” 백의는 얼굴을 들지 못하고 빌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그와 같이 무엄한 짓을 하지 않겠사옵니다.” 백의가 이렇게 사죄하면서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자 그제야 입술에서 잔이 떨어졌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백의는 탈해가 무서워서 감히 거짓말을 못하였다. 지금도 동악에는 한 우물이 있어 요내정이라 부르는데, 이물이 바로 백의가 물을 긷던 우물이라고 한다.

이 무렵 남해왕이 승하하였다. 그 뒤를 이어 남해왕의 큰 아들인 유리 왕자가 이을 차례였으나 유리 왕자는 탈해에게 왕위의 자리를 양보하였다. 탈해는 탈해대로 왕위는 유리 왕자가 올라야 한다고 거절을 하였다. 이리하여 좀처럼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탈해는 이상한 제안을 했다. 그것은 예부터 위대한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이빨의 수효가 많다고 하니 이빨의 수효를 세어서 왕을 결정하자고 했다(이사금의 뜻). 그리하여 그들은 떡을 가져다가 입으로 물어 떼어 그곳에 나타난 이빨의 수효를 보고 왕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유리 왕자가 어금니 한 개가 더 많아 먼저 임금이 되었다. 그는 시호를 노례왕이라 하였다.

탈해의 즉위
그 뒤 노례왕이 승하하자 탈해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옛적 우리 집이었다’는 핑계로 호공의 집을 차지했다고 해서 성을 ‘옛 석(昔)’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더러는 까치 때문에 궤를 열게 되었다고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자’를 떼어 버리고 남아있는 옛 석자로 성을 삼았다고도 한다.

탈해는 왕위에 오른지 23년 만에 승하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탈해왕을 소천 언덕에 장사지냈다. 그 뒤 그의 혼령이 나타나 자기의 뼈를 매장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기이한 일이어서 능을 헤쳐 보았더니 그 해골의 둘레가 석 자 두 치 이고 몸뼈의 길이가 아홉 자 일곱 치였으며 이빨은 서로 엉키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뼈마디는 떨어져 있지 않고 살았을 때처럼 붙어 있었다. 이른바 천하에 무적인 역사의 골격이었다.

그의 뼈대를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궁궐에 안치하였더니 혼령이 또 나타나 자기의 뼈를 동악에 두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신라 땅에 처음 나타나 동악에 올라가 쌓았던 돌무덤에 그의 뼈를 안치하고 나라에서는 제사를 끊이지 않고 지내면서 그를 동악신으로 모시었다.

사)한민족세계선교훈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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