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모세의 중보기도는 짧지만 강력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답다. 그의 이스라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극적인 대목이다. 모세가 산에서 지체하자 백성들은 아론을 설득하여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예배하였다. 예기치 못한 배신에 하나님은 진노하고 모세는 좌절한다. 대가는 혹독했다. ① 증거판은 산산조각 났으며, ② 금송아지를 깨뜨려 물에 섞여 마셔야했고, ③ 삼천 명 가량이 희생되었다. 다음 날 모세는 야웨께 이스라엘의 범죄를 용서하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기록하신 책에서 나를 지우소서(ינהמ).”(32절. 사역)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개역개정>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 <새번역>
Blot me out of the book that you have written <NRSV>
Erase me from the record which You have written <NJPS>

주요 영어 성경에서 확인하듯 한글성서의 ‘내 이름’은 들어있지 않다. 동사 머헤니(ינהמ)에 1인칭 단수 접미사가 들어있다. ‘나를 제거하라’는 뜻이니 ‘내 이름을’로 번역한 <개역>과 <새번역>은 의역(意譯)인 셈이다. 

‘기록하신 책’ 개념은 구약과 고대 근동 여러 지역에 알려진 문구로 당시의 가치관을 보여준다(사 4:3; 렘 22:30; 겔 13:9). 그러나 근동과 구약의 관점에 차이는 상당하다. 시편 69에 “생명책”이 언급되는데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신다는 뜻이다(시 69:28). 말라기에 의하면 “기념책”에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모든 행실을 기록한 책이다.<Shalom M. Paul, "Heavenly Tablets and the Book of Life," 59-70.> 여기 ‘생명책’은 하나님이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오래된 신앙이 깔려있다(계 3:5; 13:8; 20:12 등 참조). 모세가 언급한 ‘당신의 책’(ךרפסמ)도 바로 이와 같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자신을 그 책에서 제거하라고 대담하게 간청한다.<Houtmann 3, 673> 대속적인 기도다. 하나님의 절망과 모세의 위대한 모습이 겹치는 대목이다.

20세기 초 복음주의 설교가 할데만(Issac M. Haldeman)은 대조법을 통하여 모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노예의 자식이었으나 여왕의 아들이 되었다. 그는 오두막에서 태어났으나 궁중에서 살았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극도의 부를 누렸다. 그는 군대의 지도자였으나 양떼를 지키는 목자가 되었다. 그는 유능한 전사였으나 또한 온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궁정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광야에 살았다. 그는 이집트의 학술을 익혔으나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졌다. 그는 도시 생활에 익숙하였으나 광야에서 방황하였다. 그는 죄악의 즐거움에 유혹을 받았으나 믿음으로 어려움을 견뎠다. 그는 말에 어눌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과 교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목자의 지팡이를 지녔으나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 그는 바로에게서 망명하였으나 하늘의 메신저였다. 그는 율법을 전달한 사람이었으나 은혜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모압에서 홀로 죽었으나 그리스도와 함께 유다에 나타났다. 그를 장사해준 사람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장사하셨다.”

다시 20세기 말 타임지(紙)는 표지 모델로 모세를 선정하고 그의 지도력을 세 단어로 설명하였다.<Times, 1998년 12월> 1) 비우다(empty): 이집트 왕자라는 당시 최고의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2) 채우다(fill up): 열악한 사막이라는 현실에서 자신을 채웠으며, 3) 나누다(share): 출애굽을 통해 획득한 자유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리 위젤(Elie Wiesel)의 인물평은 압축적이다. “그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거기에 있었고,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예언자가 되려는 욕망이 없었지만 예언자가 되자 가장 위대한 예언자였다. 지도자가 되려하지 않았지만 지도자가 되자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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