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정하는 인간

일본의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시작된지 2년이 넘었다. 일본정부는 대한민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키기로 의결하는 등 한국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한민국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해온 기득권자들은 당황하며, 온갖 술수를 부렸다. 이는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코로나19와 함께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곤궁한 가운데서도, 정부와 언론보도만을 바라보며, 의연하게 사태를 주시하며, 대처해 왔다.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비롯한 일본관광 취소 등 차분하게 대처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웃나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우리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배상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회담 당시 모든 것을 배상했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제 36년의 치욕적인 고난의 역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8일 일본 최장총리를 지냈으며, 대한민국을 향해 경제보복의 중심에 있었던 아베 전총리가 살해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몇 시간동안 한민족인 재일동포와 조선인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그것은 이러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용의자를 재일교포 또는 조선인에게 뒤집어 씌워 왔기 때문이다. 192391일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우리는 이 참상을 잊지 못한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런 형태로 자신들의 위기를 극복해 왔고, 극복하고 있다. 다행히 아베 전 총리 살해사건의 용의자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그것도 자위대 전 간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선인들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일본 정치인들의 추악한 행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런 상황서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대사관을 찾아 아베를 직접 조문했다.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조문단을 일본에 보내기로 했다. 국회의장도 조문에 참여한다고 한다. 전직 총리 조문은 전직 총리가 가야 국격에 맞다. 윤 대통령의 아베 전 총리의 직접조문과 현직총리를 조문단으로 보내는 것에 대해 일부 국민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조문이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이제는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

아베는 분명 친한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친한파였다. 최소한 대한민국에 대해 우호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아베는 대한민국을 향해 못된 짓을 다한 인물 중 한사람이다. 아베는 대한민국에 각을 세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했다. 아베는 역사적 사건을 부정해 버렸다. 조선인 강제 노동자를 향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일본에 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궁창 삶보다도 못한 삶을 산 이 땅의 소년들을 향해 돈을 벌기 위해 매춘부를 자처했다고 역사를 왜곡했다. 여기에다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역사를 왜곡했다. 그럼에도 독도에는 여전히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독도는 분명 대한민국 영토이다. 이런 일본이 대한민국의 이웃국가라는데 안타깝다.

한반도 주변 열강들의 패권다툼 다시 시작됐다
한국 때문에 부자된 일본,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진정한 이웃은 누구인가

이런 상황서 매국노들의 행동은 가관이 아니다.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요시다 켄지 씨 등 위안부사기청산연대 소속 4명은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는 전시성폭력 피해자가 아니다, 소녀상 철거를 주장했다.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정했다. 이들은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일본인이다.

이에 독일 국민도, 대한민국 국민도 분노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 독일 땅에서 벌어졌다. 이들은 일제 36년 고난의 역사를 몰각했다. 고난당하는 이웃, 소외된 이웃을 몰각한 인사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상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성경 속 진리를 망각했다.

일본 역시 글로벌시대에 함께 살아야 활 이웃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며, 반목과 갈등 관계에 있는 이상 일본은 이웃국가로 함께 살아갈 수 없다. 레위기 199-18절은 이웃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누가복음 632-38절은 이웃에게 행해야 하는 일을, 로마서 632-38절은 이웃에게 악행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본식민지 아래서 고난 받은 사람, 전쟁과 기아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다.

성경의 기록대로 고난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일제36년 고난의 역사를 부정하는 매국노,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대한민국의 기득권자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노동자, 일본군의 총알받이로 희생당한 이 땅의 젊은이들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진 자와 권력자, 학식 있는 지식인을 이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혐오시설인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드는데 기득권자들이 반대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을 이웃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피해자를 타인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 정신대 피해자 이용순 할머니가 미국 하원의장 낸시 팰로시를 만나러 국회를 찾았다가 개처럼 끌려 나갔다. 이용순 할머니와 같이 고난당하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또 사회적 약자, 버림받은 자, 고난당하는 자를 이웃으로 수렴한다. 원수까지 이웃으로 수렴한다. 헌데 오늘 대한민국 아니 한국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이웃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815일 광복절 제77주년을 앞두고, 일본은 이웃나라 침략을 위해 군국주의 부활을 노골화하고 있다. 자위대 군비를 증강하는 등 전쟁하는 나라로 탈바꿈 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 자위대 재무장을 통해 아시아에서 자신들의 짐을 덜어보겠다는 속셈을 드러낸다. 여기에 한국까지 끌어드린다. 한미일 동맹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미국은 대한민국과 혈맹이다. 그러나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 국가이다. 어떻게 침략국과 동맹을 맺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일본의 악을 보았고, 그 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떻게 정치지도자와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일본과의 동맹을 말 활 수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나라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았다. 용서도 빌지 않았다. 이런 나라와 어떻게 이웃국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열강들의 패권전쟁 다시 시작됐다

오늘 대한민국은 한일합방 이전의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 등 열강들의 패권전쟁터로 회귀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는 미국을 등에 업고, 한반도에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한반도가 일본 등 외세의 군화발로 초토화되었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본의 경제보복, 중국과 러시아의 대한민국 영공 침공, 북한의 계속되는 미사일 발사, 미국의 한국기업을 향한 경제적 간섭 등 연이은 사태는 구한말 당시로 돌아간 것 같아 참담하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본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의 진정한 이웃나라는 누구인가(?)를 냉정하게 묻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 나라도 믿을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한일합방 이전이나, 해방이후나, 우리는 우리의 일을, 우리의 땅에서 우리 스스로 결정해본 일이 없다. 일본의 한국 침략 역시 일본과 미국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을 무너트린 것도, 이 나라의 민중이 아니다. 외세가 무능한 이씨 조선을 무너트렸다. ‘가쓰라-테프트 밀약,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승인한 조약이다.

미국의 양허로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가 노골적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에 대해서 보수적인 인사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된 시점에, 미국 트럼프와 일본 아베가 일곱 번 만났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들의 만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민 중 일부는 오늘날 이들 나라가 우리의 동맹이며, 이웃이고, 친구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보수적인 일부 정치인과 언론, 목회자들이 일본 식민지 아래서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이 땅의 젊은이들의 아픔을 알겠는가. 이 땅의 젊은이들은 일본군총알받이로 또는 미쓰비시 등 강제노동자로, 소녀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오빠와 아버지는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었다. 이 아리랑 고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갔던 당시를 연상케 한다.

아리랑고개 힘겹게 넘은 이 땅의 백성

이 땅의 어머니들은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은 아들과 딸, 그리고 남편의 무사귀환을 위해서 어떠한 모습으로든지 하늘을 향해 절규하며, 기도했다. 이러한 아픔과 기도를 몰각하지 않고서는 일본을 우리의 우방이며, 동맹이고, 이웃라고 운운 할 수 없다. 어떻게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한 일본이 우리의 동맹이고 이웃인가. 이웃나라 일본은 대한민국의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비열한 나라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일부 인사들이 한일 동맹을 강조하며,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 친일정부를 이 땅에 세우려는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여기에는 분명 정치적인 야욕을, 민족을 팔아서라도 채우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다. 대한민국을 침략한 일본은 또 다시 대한민국을 동맹이라고 말하면서, 등 뒤에서 비수를 꽂고,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과 그리스도인들은 우상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구약 레위기, 신약 누가복음, 바울서신 로마서는 우리의 이웃을 분명하게 교육하고 있다. 나를 미워하고, 적대하며, 보복하는 자가 원수라고 말한다. 스스로 적대적 관계를 만드는 일본과 대한민국은 군사비밀을 서로 공유 할 수 없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침략한 나라이다. 일본과 동맹을 맺을 수 없다. 일본 황국신민이기를 바라는 보수적인 인사들은 아베에게 사죄까지 했다.

목회자의 입에서는 일본 때문에 대한민국이 부자가 되었다고 막말을 쏟아져 나온다. 분명 일본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수탈해서, 6.25전쟁 때문에 부자된 나라이다. 이런 일본이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원 할 리가 없다.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없다.

북한동포 함께 구원받아야 할 이웃

오늘 일본을 극찬하는 인사들은, 일본의 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일본의 계략은 한국에 친일정부를 세우는 것이며, 둘째 경제적으로 대한민국이 앞서는 안 되고,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을 하는 나라,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에, 대한민국 국민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일본 식민지 아래서 대한민국의 국민은 왜적을 물리치는데 하나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랬다.

일제 36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은 항일무장투쟁으로 일본과 맞섰다. 헌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인과 일부 기독교 목회자, 일부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친일적인 발언은 오늘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는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원수는 처음부터 원수가 아니다. 교류하고, 살아오면서 원수가 되었다. 오늘 대한민국의 친일파는, 일본은 공격하지 않으면서, 일본 경제보복에 맞서는 국민을 공격해, 실수하도록 만들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일본은 간교하다. 일본의 간교에 넘어가는 정치인, 학자, 언론, 기득권자들을 본다.

대한민국 국민은 8.15광복절 77주년을 맞아 북한을 타인으로 생각하기보다도,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좁은 한반도에서 사방에 적을 놔두고,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이제라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인격적으로 바라보며, ‘라는 존재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시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만 살겠다고 하는 태도는 진정한 이웃을 찾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남한은 북한과 적대적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맞서 북한도 대놓고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협박한다. 때문에 성경은 적을 마주보며, 이웃으로 받아드리는 믿음을 소유하라고 교육한다. 한마디로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치라고 한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성숙한 믿음이다. 오늘 과거만 들춰내기에 빠쁜 대한민국은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일본 사람도, 북한 사람도, 미국 사람도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민족이다. 성서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교육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을 보면, 우리와 함께 살아갈 것을 포기했다. 일본정부에게서는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성경에서 전혀 발견 할 수 없다. 일본정부는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드리지 않는다. 일본에게는 강대국 미국만이 이웃이다.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타인을 이웃으로 받아드릴 때만이 진정한 이웃이 된다. 그래야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성경이 이웃을 받아드리지 않으면서, 타인의 이웃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을 반대하는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열강들은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들 나라는 한반도에서 6.25와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이를 통해 일본은 말해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속셈이다. 왜 경제침략 당시 트럼프와 아베가 11차례 만났겠는가. 여기에는 음모가 숨어 있었다. 이제라도 국민과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세상, 새 내일을 열어갈 수 있는 진정한 이웃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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