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한국교회는 공중에 붕 떠 있는 형이상학적인 교회가 아니다. 바로 사회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모여 건축자제로 지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사회적 공간임과 동시 영적 모임이다. 교회가 이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 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죄를 용서 받은 무리들이다. 이 교회가 세상에 속한 것은 성도들이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도해야 한다. 전도는 세상인 사회 속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 교회는 선교와 전도를 어떤 방법으로 전개하는지는 몰라도 교회가 제대로 생명구원을 하지 않고 있음이 일련의 일어나는 사회의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 전 전세로 사는 독거노인이 죽은 지 5년 만에 미이라로 발견 되었다. 옷을 아홉 겹이나 겹쳐 입었다고 하니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아 추위를 견디며 몸을 보온하기 위해 옷을 겹쳐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죽은 노인은 친척도 없는지 5년간 아무도 노인의 방문을 노크하는 자도 없었다고 한다. 집주인은 보증금이 남아 가끔씩 왔다가도 문이 잠겨 있으니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국내에 오백 미터 내에 교회가 없는 곳이 없고 밤에 십자가의 네온불빛이 화려하게 수를 놓는 것이 우리나라의 야경의 한 모습이다. 그만큼 교회가 많다는 증거다. 분명 독거노인이 죽어 5년 동안 방치된 곳 주변 5백 미터 이내에 교회가 여러 곳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방치 되었단 말인가? 주변 교회는 가가호호 전도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교회주변의 어렵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관심도 없단 말인가? 이는 사회, 나라, 이웃보다도 주변 교회 책임이 더 크다.

오늘의 교회는 교회주변과는 단절 되어있는 형편이고 어렵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더 관심이 없는 것은 한번 도와주다보면 평생 도와주어야 하는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기에 헌금 한 푼도 하지 못하는 자들은 전도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지 않았나? 의구심이 든다. 왜 한국 교회는 성경과 거리가 먼 선교와 전도 계획을 세우는가? 예수님 주변에는 병들고 가난한 과부와 고아 그리고 먹고 살길이 막막한 자들이 구름 같이 모여 들었다. 장정만 5천명이 먹었던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린아이 하나가 먹을 것을 지참 한 것을 보면 그 시대의 형편을 알만 하다. 너무 가난해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시대에 예수님은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셨다. 교회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몸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이상해졌다. 교회에 헌금하면 거의 교회 건물 치장과 새로운 건축에 모두 다써버린다. 그래 놓고는 교회 재정이 넉넉지 않아 구제와 선교는 나중 교회 형편이 여유가 있을 때에 전적으로 하겠다는 허풍선을 잘 날린다.

교회는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구제와 선교는 교회가 세상에서 해야 할 기본적인 본업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돈 맛을 알아 대형 교회들은 저금통장에 수백억에서 수천억을 모아놓고 쓰는 곳을 보니 세상에서 제일 큰 교회 건물을 짓는 데에 몽땅 쓰고 있는 모습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회도 자신들의 교회의 이름이 들어나지 않는 곳에는 돈 한 푼들이지 않는다고 한다. 기왕 교회 이름이 들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빛이 나지 않는 일에 헌금사용은 거부하는 형편들이다. 그런데 방송 신문에서 무슨 의연금, 돕기 행사 같은 데는 교회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수백 수천, 심지어 억대도 희사한다. 교회도 기업의 이름 알리기 위한 간접 광고 수단처럼 메스컴에서 하는 모금에 적극(?) 동참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오른 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성경 글씨로만 생각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교회주변에 있는 어느 이름 모를 독거노인이 생활고에 시달려 추운겨울 난방도 못하고 아홉 겹옷을 껴입고 자다가 동사한 기사는 세상에 교회가 왜 있는지 의문과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무용론이 대두되고, 기독교라는 신앙을 왜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일이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사회 속에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세상 사람들이 묻는다면 교회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을 못하는 형편이다. 정말 십자가 밑이 어둡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교회는 실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너무 건물이 휘황찬란해 가난한 서민들은 으리으리한 교회에 발 드려놓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교회는 돈도 좀 있고 여유 있는 사람은 환영해도 가난한 이들은 외면하는 것처럼 사회 제 문제를 외면치 말고 관심 좀 가져주면 안 되겠는가?

필운그리스도의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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