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목사
<단군 문제>

단군 문제는 신화의 베일에 싸여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을 주고 있다. 전설의 주인공이냐 사실이냐!단군 숭상은 우상숭배냐 조상숭배냐 등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감정대립까지 일어난다. 더욱이 북한은 단군을 국조 그 이상의 「신」으로까지 모시려는 일이 있기에 단군 문제는 그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우리는 단군 문제에 관해 연구되고 입증된 것은 인정하고, 허구성은 철저히 배격하며, 바른 견해를 가져야 국론분열을 막고 올바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단군 >
1. 단군왕검 출생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제석(帝釋)을 이름으로 서자 환웅(桓雄)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몹시 바랐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매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그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라 불렀다. 이분을 환웅천왕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렸다. 또한,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했다. 그리고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新雄 곧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몸을 삼간 지 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 아래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2. 단군왕검의 즉위
단군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요 임금의 즉위 원년은 무진 이니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아마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같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다.

그곳은 궁(弓) 혹은 방자(方字)로도 되어있다. 홀산 또는 금미달이라 한다. 그는 1천5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겨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1천9백8세였다.

 

3. 단군신화의 사상적 측면
먼저 사상적인 면을 보면 전체 줄거리가 하늘, 땅, 사람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하늘의 환인, 땅의 곰, 사람의 단군이다. 그리고 이 3가지 요소를 환웅을 통해 결합하고 있다. 이것은 한민족이 하늘, 땅, 인간의 삼위일체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단군신화의 위 3요소 가운데 하늘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져 있는 것을 우리 민족의 중심사상이 하늘을 숭배한 것이었음도 알게 한다. 한민족은 예부터 자신을 스스로 천손족(天孫族)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하늘을 숭배했던 종교사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한민족세계선교훈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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