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예수께서 제자단을 구성하고 선교활동을 시작할 때이다. 이보다 앞서 독자적인 제자단을 거느리고 있던 사람은 세례 요한이다. 동시대에 걸출한 인물 둘이 각기 다른 제자단을 거느리게 된 것이다. 만일 제자단끼리 생각이 달라 서로 충돌한다면 어떻게 될까? 친 이집트파 친 바빌론파로 사분오열하여 나라의 멸망을 자초한 저 옛날 유다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먼저 궁금증이 인 쪽은 세례 요한이다.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당신이 오실 그 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어오도록 한다. 요한의 물음은 일단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고 서로 충돌한 가능성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다. 그만큼 큰 인물이다.

예수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보라고 한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만일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는 일이라면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고, 바다가 솟아서 땅이 되고, 땅이 꺼져서 바다가 되고 하는 천지개벽의 사건이어야 맞다. 그런데 고작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는 일이라니 이보다 더 실망스러울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이 그러하다. 세상 나라는 정복과 확장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오는 희망을 말한다. 세상 나라는 물질을 중심으로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말한다. 세상 나라는 나라의 번영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이들의 기쁨을 말한다.

예컨데 박정희의 업적을 말하는 이들은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를 보라고 한다. 한강의 기적을 보라고 한다. 그들은 산업화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 피를 토하며 죽어간 청계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를 보라고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쓰러진 근로자들의 탄식은 덮으려고만 한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이렇게 다르다. 그걸 구분 못하는 한국교회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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