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기독교 영성의 대가인 유진 피터슨은, “우리는 공동체다. 우리는 각각 혼자서는 자신일 수 없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태어나며, 공동체에서 살아가며, 공동체에서 죽는다” 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을 온전한 공동체의 회복으로 보고 있음이다. 동시에 이런 공동체의 비전은 항상 유혹을 받고 있음을 말한다. 그중 하나는 분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이다.

분파주의는 자신과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몇몇 사람들과 함께 특별한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서 나타난다.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뉜 고린도교회의 경우는 그 한 예이다(고전 3:3-4). 분파주의는 꼭 공동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자신에게 맞도록 재구성하려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응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내 필요에 응하도록 하는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다. 분파주의의 해독이 신앙생활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언행에서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막 10:2).

나르시시즘은 오늘날 세속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세속사회는 자기도취가 미화되고, 그로 인해 유명인사가 되고, 지도자가 되어 환영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영혼에 몰입해서 자기 자신의 영성 개발에 몰두하는 현상이 있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영성, 자기충족적인 영성, 자기발전을 꾀하는 영성은 알고 보면 자기 내면에서 신성을 계발하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정의된 자기가 아닌, 세속주의에 의해 정의된 자기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영성은 그게 아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온전히 하나 되는 공동체 영성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23)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들이 부흥을 목적으로 세속사회의 자기 계발 열풍에 부응해서 개인적인 영성계발에 몰두하는 것은 일그러진 영성운동임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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