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오래전 얘기이기는 하지만, TV텔런트 박원순 씨의 사연으로 마음 아픈 일이 있다. 한 남자와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하고, 마지막 남편과는 사업 실패로 또 이혼하고, 빗만 물려받아 출연료 전부를 차압당하며 고단하게 살았는데, 34살 된 외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는 비운을 겪게 되었으니, 무슨 위로가 소용이 있겠는가! 세상인심은 그녀를 향해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라며 수군거렸지만 누군들 ‘나는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우리들 인생을 질그릇에 비유한 바 있다(고후 4:7a). 깨질 수밖에 없고, 썩을 수밖에 없고, 변형될 수밖에 없고, 소멸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생이라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몸이 강철처럼 단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치명적인 결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인간은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슈퍼맨이 되기 위해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가려고 했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짧고, 형태는 쉽게 손상되며, 조직은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 

우리 몸은 운동과 단련, 식생활 개선 등을 통하여 적절히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좋은 약과 의사의 치료와 장기이식 등을 통해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몸이 지니고 있는 죽음에 대해 끝까지 저항할 수는 없다. 내 생명을 내가 새롭게 하거나 연장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질그릇 같은 몸을 지닌 인간이 겸손을 배우는 시작이다. 인간의 참다운 가치는 강함에 있는 게 아니라 약함에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b)고 했을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한다며 새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고후 5:16-17)이라는 것이다. 비록 질그릇 같은 인생임에도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삼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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