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하였나이다”(사 26:18).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하였다. 울며 씨를 뿌린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온갖 고생 끝에 허망한 결과 밖에 얻은 게 없다면 그보다 더 마음 상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바빌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다. 인고의 세월 끝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 왔으나 마주친 현실은 빙벽과 같았다. 포로 생활의 서러움을 안으로 새기면서 조국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억울한 노예 생활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음에도, 조국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상은 고상했으나 그것을 꾸려나갈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문제의 근원을 꿰뚫어 본다. 인간의 꿈과 이상과 열망이 아무리 높고 고상할지라도, 그 근저에 하나님이 없을 때 그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인가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허망의 그림자를 ‘바람’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람을 잉태했던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계략들은 스스로 분노의 심판을 불러들인다. 이성을 잃은 광기, 선과 악을 분별할 줄 모르는 야만성,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아버리는 파렴치함은 모두 ‘바람을 잉태한 백성들’이 짊어져야 할 업보이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 달리 방법이 없다. 각기 자신에게로 돌아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근원을 물어야 한다. 잠시 위기만 넘기려는 잔재주는 더 큰 화를 부른다. 인간의 낙관은 하나님 앞에서는 절망이다. 자신을 망각한 축제 뒤끝은 언제나 공허의 그림자가 드러눕는다. 오늘날 욕망의 질주가 낳은 범지구적인 재앙들 역시 살 길은 오직 근원에 대한 성찰뿐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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